[詩의 황홀] 예이츠 묘비명

입력 2012-12-31 17:08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예이츠 (William B. Yeats 1865~1939)

삶 위에, 그리고 죽음 위에

차가운 눈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가라.


첫 순서를 예이츠의 묘비명에서 시작한다. 이 시는 아일랜드 북서쪽 항구도시 슬라이고의 벤 불벤(Ben Bulben)산 자락에 있는 수도원 곁 예이츠 무덤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예이츠는 자신의 시 ‘불벤산 기슭에서’의 마지막 3행을 직접 묘비명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 시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말을 타고 가면서 삶과 죽음을 돌아보라는 해석도 있다. 그렇다면 너무 평범하다. 예이츠는 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켈트 문화의 그윽한 정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인이다.

주변 강국의 오랜 핍박 속에서 많은 인구가 나라를 떠났지만,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자국문화의 힘을 발견해 사회적 대타협의 연대를 형성한 아일랜드인들.

예이츠의 노래는 그런 아일랜드의 유현(幽玄) 사이로 깊이 울린다. 켈트음악의 신비로움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 노래는 그의 묘비명이다.

앞의 두 행은 그런가보다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에 시선을 던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우리의 이목을 끌기 어렵다. 그러나 마지막 행과 결합하면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으로 변한다.

말의 생명은 달리는 것에 있다. 말 탄 자는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렇게 분주한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과 시는 다가오지 않는다. 말 탄 자는 어서 지나가라. 말은 달려 사라지고, 적요(寂寥)가 쏟아지는 텅 빈 공간에서 삶과 죽음에 눈을 던질 수 있는 깊은 자여. 이 시에 차가운 시선을 한번 던져다오. 그런 리듬으로 읽는다면 이 시는 놀랍고 황홀하다.

임순만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