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나이들수록 더디게 사는 법

입력 2012-12-31 17:03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누구나 느끼는 이 같은 의문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모양이다. 시중에 꼭 같은 제목의 연구 서적(다우베 드라이스마 작·2005년)까지 나와 있는 걸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이 같은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수백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 의학자,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모은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 즉, 사람은 시간을 사건으로 기억한다는 것. 다시 말해 새로운 사건과 이벤트가 이어지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반면 같은 이벤트가 되풀이되면 시간을 짧게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랬듯 어린 시절 시간이 꽤 더디게 간다고 느꼈던 것은 각자 태어나 처음 접하는 다양한 일상 때문에 그런 것이고, 나이가 들어 꼭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시간이 천천히 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연구자는 늙어서도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지 말고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 일상에 변화를 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탈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5060, 적극적 자기계발 필요

하지만 나이 들어 일상을 다양한 이벤트로 이어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50이 넘으면 직장에서 밀려나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다, 60이 넘으면 숫제 잉여인간으로 치부되기 쉬운 것이 냉엄한 현실 아닌가. 산업화 시대의 주인공으로 근대사의 온갖 풍상을 힘들게 헤쳐 온 50·60대에겐 어디 이벤트를 만들 휴식조차 가당했던가. 일상을 이런 저런 새로운 이벤트로 만들어 이어가기엔 그들이 지나온 세월은 너무 바빴다. 그들에게는 휴식이란 정체를 의미했고, 퇴보로 이어지는 걸로 생각됐다.

최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도시지역 50대 장년층의 여가생활 실태’ 보고서에서 보듯 도시지역 50대는 자기계발, 봉사활동, 단체활동 등의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50·60대가 사회의 뒷방 늙은이로 머물기엔 여생이 너무 길고,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그들은 다가올 100세 시대를 살기 위해 30∼40년 이상을 더 버텨야 함을 알고 있다. 또 이번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들 집단은 앞으로 다가올 몇 차례의 대선에서도 캐스팅보트를 쥘 공산이 커졌다. 따라서 자신들이 한동안은 이 사회의 주인공이며 실질적 리더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50·60대는 건강해야 할 의무가 있고, 세월이 빨리 흐르도록 자신을 놔버려서도 안 된다. 비록 적극적 여가활동을 할 만한 교육과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자기계발과 봉사활동, 취미·문화생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 보듯 적극적인 여가활동에 대한 그들의 욕구가 어느 세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정말 다행스럽다.

여가기본법에 많은 기대를

때마침 국민들의 여가활동도 국가의 책임임을 선언한 ‘국민여가활성화 기본법’이 만들어져 조만간 발의를 앞두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여가 기본법이 비록 선언적 의미에 그칠지라도 선진 복지국가로 가는 첫 걸음임엔 틀림없다. 이 기본법이 정식으로 입법화되면 그 혜택은 우선 시간이 많은 50·60대에게 돌아올 것은 자명하다. 국가의 적극적인 예산 지원 하에 이뤄질 다양한 여가활동은 50·60대의 건강생활과 역사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에 기름을 부어줄 것이다. 다양한 이벤트, 변화무쌍한 일상, 그것은 그들에게 나이 들수록 시간이 더디게 가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체육부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