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여대생 끝내 숨져… 분노의 촛불 든 인도

입력 2012-12-30 22:42

흰 꽃에 덮인 황금빛 관이 인도 뉴델리의 인디라간디 공항에 29일 새벽 4시15분(현지시간) 도착했다. 23세의 의대생이 누워 있었다. 지난 16일 뉴델리의 버스에서 집단 성폭행과 구타를 당하고 싱가포르에서 치료를 받던 여성이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 것이다. 만모한 싱 총리가 직접 공항에 나와 관을 맞이했다. 곧바로 장례식이 치러졌고 시신은 화장됐다. AFP통신은 그가 내년 2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다고 보도했다.

총리의 애도는 인도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진 못했다. 해가 뜨자 뉴델리 중심지 잔타르만타르 공원에는 또 수천명이 모였다. 사고 직후부터 2주 동안 이어져 온 집회다. “성폭력을 중단하라”는 외침은 “우리는 정의를 요구한다”는 반정부 구호로 바뀌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성폭력범보다 성폭력 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정부에 더 분노하는 듯했다.

뉴욕타임스는 인도 정치지도자들의 언행이 국민의 분노를 더 돋웠다고 전했다. 집권 여당 대표이면서 여성인 소니아 간디 국민회의 총재가 국민 설득에 먼저 나섰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진 못했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싱 총리가 TV카메라 앞에서 특별담화를 발표했지만, 마지막 부분에 “(촬영이) 잘 되었나?”라고 묻는 부분까지 방송되는 바람에 조롱만 받았다.

뉴델리 병원이 매일 피해여성의 치료 상황을 브리핑하자, 석연찮은 이유로 싱가포르로 옮겨졌다. 경찰은 시위대에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았다.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 정부기관도 문을 닫았다. 현지 영자신문 더힌두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인도는 결혼할 때 여성이 지참금을 가져가야 해 가난한 집안에선 딸이 짐으로 여겨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태어나마자 버려지는 숫자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유니세프 조사에서 15~19세 소년의 57%, 소녀의 53%가 아내는 맞아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여성 인권 의식이 빈약하고 사회적 지위도 낮다. 치안도 불안한데다 성폭행 사건에선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가 퍼져 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5년간 인도의 총선거에서 성폭력범 27명이 출마했고 이 중 5명이 현직에 있다고 전했다. 인도에선 매년 200만명의 여성이 실종되고, 10만명의 여성이 결혼지참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다고 미국 뉴욕대 데브라즈 네이 교수는 밝혔다. 2011년 인도의 성폭행 범죄는 신고된 것만 2만4000건이 넘어 1년 전보다 9.2% 늘어났다. 인신매매는 122% 급증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