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0∼5세 무상보육 후폭풍 걱정된다

입력 2012-12-30 19:00

새누리당과 정부가 비공개 당정협의를 갖고 내년부터 만 0∼5세 영·유아 무상보육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소득에 관계 없이 해당 자녀를 둔 가정은 시설 보육료나 양육수당을 받게 된다. 영·유아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데다 민주통합당도 같은 주장을 펴 왔기 때문에 양당의 협공에 선별 복지를 주장하던 정부가 두 손을 든 셈이다.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취지는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고육책이란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3∼5세에게 양육수당을 줄 경우 저소득층 등 일부에서는 돈을 받기 위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보내지 않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이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내년 무상보육을 위한 예산부족분 1조4000억원을 증액하기로 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0∼2세 무상보육 때문에 재정이 바닥난 서울시 구청장들이 지난달 내년 보육예산을 늘리지 못하겠다며 반기를 들자 이들의 요구도 대폭 수용했다. 사회복지예산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1대 1 매칭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지자체 몫 7000억원 중 3500억원을 정부 예산에서 퍼주기로 했다. 나라곳간을 축내고 원칙을 허물면서까지 포퓰리즘의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개탄스럽다.

정부는 당초 내년 경제성장률을 4%로 보고 4조8000억원 재정적자를 예상했으나 최근 3%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적자폭이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영·유아 무상보육을 포함한 박 당선인의 민생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6조원이 내년 예산에 포함되면 재정적자는 2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등 박 당선인의 공약을 위해선 5년간 135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이를 충당하려면 나라곳간은 순식간에 비게 될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복지제도를 더 이상 도입하지 않더라도 정부 부채가 206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18.6%로 2경(京)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국가재정은 퍼내도 줄지 않는 화수분이 아니다. 지방재정은 더 심각하다. 지자체들은 올해 0∼2세 무상보육만으로도 복지예산이 동난 상황이다. 내년은 정부 지원으로 넘긴다고 해도 해마다 지자체들의 재정부담을 어떻게 할 셈인가.

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주먹구구식이어서는 안 된다. 당장 시급한 정책을 제쳐두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는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이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탄탄해진 후에 누구나 보편적 복지를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