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규제없어도 ‘골목상권’은 성역… 공장 신설땐 실업자 대거 고용
입력 2012-12-30 18:46
朴당선인 ‘상생 구상’은 獨이 모델
“서민들이 오랫동안 어렵게 만든 골목상권을 대기업이 뺏어서는 안 된다.” “한창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고용 형태는 좀 자제해 달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임원들을 만나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와 정리해고 문제를 지적했다. 정당한 기업활동은 지원하겠으나 공동체와 상생을 해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박 당선인은 “서민들이 하고 있는 업종까지 재벌 2, 3세들이 뛰어들거나 땅이나 부동산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상권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리는데 대기업이 오랫동안 어렵게 만든 상권을 뺏는 식으로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대기업은 글로벌 해외기업을 상대로 경쟁해야지 우리 중소기업 골목상인의 영역을 뺏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라든가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분담에 나서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 좀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대기업의 모습을 강조한 박 당선인의 발언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독일의 대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회사인 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등을 비롯해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바이엘, 전자·기계 회사인 지멘스 등이 독일 회사다.
박 당선인이 우리 대기업의 첫 번째 문제점으로 지목한 골목상권 침해 문제도 독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도 않는다. 독일 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택환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독일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불공정 거래나 카르텔은 상상할 수 없다”며 “한국처럼 확장에만 신경 쓰는 문어발식 경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정 경쟁과 관련한 정부의 법 집행이 철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 예로 독일은 학교마다 교실 칠판 등 시설과 집기가 다르다고 한다. 여러 중소기업들이 납품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등의 규제를 하지 않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역이 나뉘어 있다.
박 당선인이 지적한 정리해고 문제도 독일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우선 노동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근로자들은 기업이 몰락해 문을 닫지 않는 한 해고될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임금을 낮추더라도 일자리를 보장하는 형태다. 독일의 국민자동차로 불리는 폭스바겐의 경우 지난 2001년부터 시행 중인 ‘폭스바겐 아우토 5000 프로그램’을 통해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공장을 세우면 근로자 전원을 장기 실업자나 청년 실업자로 채용했다. 그 대신 임금은 근로자 평균 임금보다 10∼15% 낮췄고 근로자들도 적극 동의했다. 대기업은 사주 개인이나 대기업 구성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공익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대기업은 국민들의 뒷받침과 희생, 국가의 지원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국민기업의 성격을 갖고 있어 우리 공동체와의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박 당선인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