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다시 서야 할 제자리
입력 2012-12-30 17:49
내 사무실에는 특별한 식물이 하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이 없어서 지나가는 눈에는 잡초 수준이라고 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특별한 식물이다. 막내딸 아이가 학교에서 키우던 화분인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집으로 들고 오는 도중에 잎사귀 몇 개가 얼어버렸다. 힘없이 늘어진 잎사귀를 보면서 그칠 줄 모르고 서럽게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는 ‘아빠가 살려주겠노라’고 장담하고서 그것을 나의 사무실로 가져왔다.
한 번도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햇빛만 들면 양지바른 곳으로 그것을 옮기는 것이 일이 되어버렸다. 햇볕이 한 뼘만큼만 들어와도 그 자리에 식물을 놓는다. 사무실에 꽤 근사한 화분들이 있건만 그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던 나였는데, 유독 딸아이가 가져온 그 화분을 향해서는 시시때때로 눈길을 보낸다. 눈길만이 아니라 말도 걸어본다. 식물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딸의 신신당부 때문에 어색하지만 말도 걸어보았다. “사랑한다, 예쁘다.” 요즘 나는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쏙 빠져버렸다. 그런데 그 식물이 누가 보더라도 근사하고 화려한 식물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다.
초라한 잡초 같은 식물을 향해 이토록 깊은 관심과 사랑이 가는 이유를 나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랑을 쏟았기에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밖에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그 일이 내게 이미 체험적 사실이 되어버렸다. 딸 덕분에 나는 요즘 근본적인 진리를 다시금 되새긴다. ‘사랑 받을 가치가 있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로 인해 가치가 생긴다’ 는 진리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 그렇게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발견했고, 진정한 인생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빈곤과 관련하여 취재를 하던 중 한 여죄수와의 면담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음식이나 돈이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함이며 ‘자존감의 회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노숙인과 빈민을 위해 정규대학 수준의 인문학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를 창설했고, 많은 이들이 이를 통해 재활에 성공했다. 자존감에서 나오는 자신감 회복이 ‘인생의 진정한 출발원점’이라는 사실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역시 진정한 자존감 회복의 출발은 복음 안에 있다. 테니스공을 받아넘기는 순간, 다음 공을 기다리며 즉시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2012년 한 해가 저무는 순간이다. ‘내가 누구며 어떤 사랑을 받았는가?’ 이 근본적인 생각을 하며 우리의 자세를 빨리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새해에 펼쳐질 능력 있는 삶을 기대하려면 회복된 자존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서야 할 제자리다. 나는 요즘 잡초 같은 식물을 키우며 감격하면서 이것을 되새기고 있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