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한주] 부모의 기대, 자녀의 부담
입력 2012-12-30 19:02
진로상담을 하다보면 졸업을 앞둔 4학년생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부모님께 미안하다”는 말이다. 부모님이 비싼 등록금을 부담하며 희생해 오셨는데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할 것 같지 않아 부모님에게 보답할 길이 막막해서 그렇단다. 단적으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고 불안하단다.
꺼내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부모들이 기대하는 자식의 직업이 의사나 변호사, 낮춰 잡아도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 회사원이라는 것을. 말로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가난해도 화목하게 살면 된다”고 하지만, 내심 버젓한 직장,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갖기를 바란다는 것을.
취업으로 보답 바라는 부모들
그런데 문제는 부모의 당연한 기대가 자녀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100대1을 넘나드는 판이니 버젓한 직장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자식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자크 라캉의 말처럼 대타자(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주체(자식)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죄책감이 젊은이들을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의 불행을 덜어주는 길은 이들을 옥죄는 불건전한 죄책감과 부담감을 덜어주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에게서 죄책감과 부담감을 덜어주려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렇다면 방향을 돌려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부모의 기대에 묶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부모의 기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자식이 부모의 암묵적인 기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영향을 덜 받게 할 수는 있다. 적어도 자식들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독립해 더 이상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면, 부모에 대한 부담감과 죄책감은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청소년 문제의 해법은 청소년들의 자립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
이들의 자립을 막고 부모 의존을 존속시키는 장애 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대학교육비와 결혼비용 부담이 그것이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대학교육비를 대폭 낮추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편적 반값 등록금이 필요한 이유는 반값 등록금이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녀들의 자립을 도와 정신적인 부채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자립 유도해 부채감 줄여줘야
청소년의 자립을 유도하려면 고비용 결혼문화도 혁파해야 한다. 예식비에, 혼수에, 신혼집 마련에 부모가 목돈을 대고 간섭하는 현재의 결혼문화는 전근대적이고 비생산적이다. 자녀의 자립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예속을 강화할 뿐이다. 사랑하는 청춘남녀라면 호화결혼식을 치르지 않더라도, 비좁은 원룸에서라도 함께 사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 값싼 월세방을 충분히 공급한다든가, 결혼 장려금을 지급한다든가 해서 젊은 남녀들이 억압 없이 사랑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한국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부담감을 지우는 사회다. 부모들이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챙기기 때문에 자식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엄청나다. 일본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가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일찍 죽어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 자녀들의 자립을 고민해볼 때다.
곽한주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