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인생 리셋

입력 2012-12-30 19:03


밖에서 눈을 치우는 소리가 난다. 어릴 적 엄마하고 시장을 다녀오면서 노래 ‘에델바이스’를 함께 불렀던 것이 기억난다. 생선은 신문지에 싸여 있었고 눈이 소복이 내렸고, 추웠다.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 인생의 행복했던 한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다. 가끔 힘들 때는 지금이 그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예술학교를 다니다가 인문계로 과감하게 진로를 바꿨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대로 미술을 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지 않을까?

후회되지 않지만 궁금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사람들은 언제로 가고 싶을까? 6∼7세 때 동네 애들끼리 눈싸움하며 신나게 놀았던 때나 대학시절, 제대한 다음 날 등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 진로를 결정하기 전, 인생에서 가장 나태했을 때 등 인생의 전환기를 꼽으며 다시 돌아가서 한 번쯤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아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슴 아픈 일이 있기 전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옛날 영화가 있다. 자고 일어나보니 어제 아침.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남자 이야기다. 벌 받을 수 없으니 나쁜 짓도 하고 방탕하게 놀기도 하지만 잠들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그대로. 다시 그날 아침이다. 어제의 시행착오를 고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는 그 반복되는 하루를 착한 일을 하고 조각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는 등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노력하며 보낸다.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고서야 반복되는 하루의 마법이 풀린다.

‘다시 OO때로 돌아 가고 싶어’라는 것은 헛된 생각일 뿐이다.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인생을 리셋할 수도 없다.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그냥 살아갈 수밖에 없다. 2013년 달력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1월 1일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봤던 숫자다. 현실은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처럼 실제로 인생이 리셋되지 않지만 우리 나름대로 마음을, 삶의 방식을 리셋할 수 있도록 1년, 1개월, 1주일, 1일이라는 시간 단위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2012년 마지막 날. 지난 1년을 잘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아서 새해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날이 365개가 생기는 행복한 한 해였으면 한다.

안주연 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