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저성장 시대에 대처하는 자세
입력 2012-12-30 19:02
올해는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는 국내외 기관들이 유난히 바쁜 해였던 것 같다. 지난해 이맘때 올해 경제가 힘들 것이라며 제시했던 성장률을 보면 LG경제연구원이 가장 낮은 3.4%였고, 현대경제연구원이 가장 높은 4.0%였다. 정부·한국은행(3.7%),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3.8%로 중간 쯤 언저리였다. 기관들은 5월을 지나면서 아니다 싶었던지 조금씩 성장률 전망을 낮추기 시작했다. 전망치를 늦게 내놓을수록 수치는 계속 떨어졌다. 결국 올해 성장률 2%는 기정사실화됐다.
내년도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기관들은 내년에도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3%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월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4% 성장을 예상했던 정부도 지난 27일 3.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매년 그래 왔듯 올해도 예측이 빗나갔으면 하는 희망도 가져 본다. 그래도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 추이를 보면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91∼97년) 평균 7.5%에 달하던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98∼2008년)에는 4.4%, 2008년 금융위기 이후(2009∼11년)에는 3.4%로 크게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이미 3%대로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성장률은 정부가 맘만 먹으면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률을 억지로 끌어 올리면 물가 불안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잠재성장률이 3%라면 물가불안 등의 부작용이 없이 우리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가 3%인 것이다. 정부는 2030년 이후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1.9%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이마저도 낙관적인 전망일 수도 있다.
통일 같은 획기적인 반전의 계기가 없는 한 저성장 시대는 피할 수 없다. 앞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들 모두 저성장의 시대를 맞아 왔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폴 크루그먼 교수도 “선진국 진입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우리 가계는 저축 대신 빚으로 지탱돼 왔다. OECD가 추산한 것을 보면 88년 25.9%까지 상승했던 우리의 가계저축률은 카드대란과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올해 2.8%까지 고꾸라진 상태다. 저축률이 떨어지면 투자와 소비가 줄어들고 내수위축과 성장세 둔화로 이어진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가계 부채를 지목한다. 집을 팔아도 금융 부채를 다 갚지 못하는 ‘깡통주택’ 보유자가 19만명에 달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돼 있다.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64%까지 높아져 선진국 평균보다 높다고 한다. 서브프라임 위기 당시 미국의 비율은 138%였다.
예전처럼 집값이 다시 뛸 것으로 생각하고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매년 집값이 과거처럼 뛴다면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한 채 장만할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겠는가. 이제 과거 고성장 시대에 대한 헛된 환상을 깨야 한다. 저성장 시대에 맞게 우리 개개인의 경제 체질도 함께 바꿔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을 하고 빚부터 갚아야 한다. 그게 저성장 시대를 맞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맹경환 경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