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영진 (9·끝) 축구 통한 지구촌 의료선교가 남은 생의 목표

입력 2012-12-30 17:52


의사의 도리와 사명, 책임 등을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조금 힘들더라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어서다. 상대적으로 힘든 전공분야를 선택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예전에 비해 많아지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 매일 계속되는 수술, 예후가 좋지 않을 때의 스트레스 등은 상대적으로 힘든 전공분야의 의사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조금 편한 전공을 선택하는 사람들만 많아진다면 기우지만, 결국 심장이나 뇌를 수술할 의사가 우리나라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아버지, 저 신경외과로 정했습니다.”

“뭐라고? 다시 생각해봐. 너 아빠 보면 모르겠니?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냐. 체력도 있어야 하고 정신력도 강해야 해. 네 사생활도 거의 없어져.”

대한민국 어느 부모도 자식이 의대에 입학하면 은근히 자랑하고 싶고 어깨도 살짝 올라가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아들이 재수를 하고 경희대 의대에 입학했을 때 내심 기뻤다. 그런데 일반 수련의 생활을 하면서 외과를 돌더니 어느 날 신경외과를 전공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기특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부정(父情)으론 반대해야 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좀 힘들더라도 신경외과 등을 전공하라고 권유하면서 내 자식에겐 편한 전공을 권유하는 모습으로 비쳐질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웅장여어(熊掌與魚) 상황이었다.

아들에게 어머니와 상의해보자고 했다. 내 생활을 옆에서 지켜봐왔던 아내라면 반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뜻밖의 말을 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놔두세요. 좋은 신경외과 의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아내와 아들에게 속으로 감사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는데도 남편,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뒷배 없이 정상적으로 전공과목을 선택했고 신경외과 의사의 길에 들어섰다.

아들과 함께 회진을 하기도 하면서 다른 신경외과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것이 또 있다. 환자에게 병증에 대해 친절하고 소상하게 설명하라고 한다.

신경외과에서 흔한 병증 중 하나는 뇌졸중이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중 두 번째다. 발병하면 신체적 장애로 인해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병 등의 질환과 연관된다. 나이, 가족력, 65세 이상의 흡연, 비만, 스트레스 등도 영향을 준다. 65세 이상인 흡연을 하는 고혈압 환자가 뇌졸중에 대한 가족력이 있다면 상당한 위험군에 속한다. 뇌졸중 발병 위험 인자를 갖고 있다면 꾸준한 운동과 식습관 관리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른 병증은 뇌동맥류이다. 뇌혈관 벽이 혈류나 다른 요인으로 인해 얇아져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병을 말한다. 40∼60대에 터지는 경우가 많다. 30% 정도는 즉사하고, 30%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요즘엔 뇌를 열지 않고 수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태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뇌출혈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노래방에 가지 말라고 권한다. 고음 부분에서 소리를 지르다가 혈관이 터질 수도 있다. ‘큰일’을 보면서도 조심해야 한다. 배변을 하면서 힘을 너무 세게 줘도 위험할 수 있다. 허리를 숙여서 머리를 감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급격한 온도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사우나나 찜질방도 피해야 한다. ‘열 받는 일’도, 심한 운동도, 음주도 하지 말아야 한다. 혈압이나 경련은 늘 관리해줘야 하고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 어린이 환자라면 울어서도 안 된다.

원장이란 직책을 수행하면서 남아 있는 숙제라면 생활을 돌보는 암센터 건립, 효과적인 협진 등 병원의 현안을 소통과 공유로 풀어가는 일일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축구를 통한 의료선교가 새로운 목표가 될 것이다.

정리=전재우 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