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상의 역설] 강사 윤영웅씨 “캘리그라피에는 힘든사람 응원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입력 2012-12-28 18:34
“20∼30대 젊은이들. 한 주 따뜻함 없는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분들이 캘리그라피를 쓰면서 위로받는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쁘고 따뜻한 글씨를 쓰면서 마음이 착해졌다는 분, 캘리그라피를 이용해 선물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가르치는 제가 감동을 받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서울 종각의 한 학원에서 3시간 짜리 캘리그라피 강의를 하고 있는 윤영웅(29·사진)씨는 유명 신발회사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윤씨는 직업과 별도로 캘리그라피 작업을 한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좋은 글귀를 써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길 좋아했던 그는 올해 8월부터 캘리그라피를 가르치는 강의를 시작했다.
한 반에 30명. 그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서둘러 수강신청을 해야한다. 신청은 순식간에 마감되고 다음 강의를 듣기 위해 대기할 수 없느냐는 문의도 빗발친다. 강의는 내년 3월까지 이미 마감된 상태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카카오톡, 메신저, SNS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죠. 내가 직접 쓴 글씨로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사실 번거롭고 귀찮지만 정성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수업은 캘리그래피 기법과 연습, 교정,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순서로 진행된다. 완성된 작품은 캔버스 액자에 담아 소장할 수 있게 한다. 수업이 소수로 진행되다 보니 윤씨가 직접 학생들 옆에서 개성을 담은 각자의 글씨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도 한다.
윤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생으로 한 중년 남성을 꼽았다. “나이 지긋한 수강생 한 분이 수업에 참가하셨어요. 머리를 긁적이시며 ‘아내에게 편지를 안 쓴지 30년째인데 총각 때 처럼 멋지게 써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누구보다 열심히 하셨어요. 나중에 전화해보니 사모님이 엄청 감동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가슴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윤씨는 월드비전, 유진벨재단, 빅이슈코리아 등에서 캘리그라피가 들어간 제작물을 만드는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편에도 윤씨의 캘리그라피가 사용됐다.
윤씨는 “맘에 드는 글씨가 있다면 똑같이 따라 쓰면서 연습하고 자신의 글씨체의 개성을 더해가면서 자신만의 캘리그라피를 완성할 수 있다”며 “캘리그라피는 차갑고 어둡고 힘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