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일용할 양식

입력 2012-12-28 18:09


이향아(1938∼ )

가을 들판 노적가리 짚단에 파묻혀도

허기는 사철 때를 맞춰 와서

유리하는 탕자로 당신을 떠납니다.

굶주리면 당신을 은금과 바꿔

해마다 흉년

어둡고 긴 겨울

우리들의 양식은 사랑

오늘날 일용할

양식 중의 제일은 사랑

돌배나무 그늘에서도 두 팔 벌려

기다리면

나도 단물 오르는 가을 열매

두 마리 물고기와 다섯 덩이 떡으로

평생을 먹고 남을

땅 위의 양식

광주리에 넘치는 기적이여

타고난 이 육신에 불을 붙여주소서

내 영혼의 등잔에

향유를 채워주소서

혼신으로 뽑아 올린 심지 끝에서

내 생명을 광휘로 사르게 해주소서

주여,

내 잔이 차고 넘칠 때에도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게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