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거위의 수난

입력 2012-12-28 18:22

오리과에 속하는 가금류인 거위는 야생 기러기를 길들인 것이다. 유럽품종과 중국계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개리를 개량한 중국계가 많다. 거위는 사람이나 가축을 보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우는 습성이 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 이웃에서 집보기용으로 키우는 거위 소리에 놀랐던 기억을 한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쌍떡잎 한해살이 풀인 명아주 잎 모양이 거위 발바닥을 닮아 외국인들은 구스풋(goosefoot)이라고 부른다. 한 여름 지천에 깔린 명아주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도 있고 즙을 내 일사병과 독충에 물렸을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많이 먹으면 피부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 자란 명아주는 단단하고 가볍기 때문에 지팡이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실학자 서유구가 쓴 영농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도 거위 사육법이 실려있다. 고문서에는 820년에 신라의 거위를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어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거위를 키웠음을 알수 있다. 거위는 반드시 물에서 짝짓기를 하기 때문에 집안에서만 키우면 알을 얻을 수 없다.

거위에 관한 한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푸아그라다. 문제는 큰 거위 간을 얻기 위해 강제로 음식을 먹이거나 뇌의 식욕조절 부위를 파괴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푸아그라 요리 자체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최근에는 간단한 화학물질만 주입해도 거위가 식욕조절 기능을 상실해 밤낮없이 먹기만 하는 방법도 개발됐다고 한다. 잔혹한 미식 습성이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릴 당시 일부 프랑스인들이 우리의 사철탕 습성을 문제 삼아 야만인 취급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우리 선조들은 동구불식(冬狗不食)을 철저히 지켰다. 겨울철에는 개들이 생기가 없기 때문에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겨울철 보신탕 매출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이유다.

새해를 앞둔 요즘 프랑스에서는 거위가 수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보통의 프랑스인들은 연말 연초에 고향을 찾아가 밤부터 새벽까지 먹고 마시는 파티인 레베이용을 즐긴다. 이때 잔인하게 사육한 불쌍한 거위 간으로 만든 푸아그라를 먹는다. 과연 어느 쪽이 야만인에 가까운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