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무원 뇌물죄 ‘한정위헌’… 헌재가 대법 판결 또 뒤집어
입력 2012-12-27 19:53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뇌물죄로 처벌한 법원의 판결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지난 6월 ‘GS칼텍스 사건’ 이후 또다시 헌재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뒤집으면서 두 기관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27일 “법원이 정부 위촉위원을 공무원으로 판단해 뇌물죄를 적용한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며 제주도 재해영향평가 심의위원 남모(54) 교수가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의 의견으로 한정위헌 결정했다. 한정합헌·위헌 결정은 문제가 된 법률조항 자체는 놔두고 법원이 그 법률을 해석한 기준에 대해 위헌 여부를 따지는 결정이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뇌물 혐의로 기소된 남 교수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다. 남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공무원이 아닌데도 뇌물죄가 적용됐다”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대법원은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형을 선고했다. 즉, 법원은 준공무원(공무원에 준하는 일을 하는 일반 사람)도 형법상 공무원으로 볼 수 있다고 폭넓게 해석했지만, 헌재는 이를 위헌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비슷한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이 줄줄이 재심을 청구할 전망이다.
헌재는 특히 이번 결정문에 “한정위헌 청구가 적법하다”고 명시하며 법률뿐 아니라 법원의 재판 등 법률 해석행위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를 인정해 대법원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법원이 구속될 필요는 없다는 게 법원의 기본적인 방침”이라고 말했다.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고 법원의 기준대로 판결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6월에도 헌재는 GS칼텍스 측이 “없어진 규정을 근거로 세금을 물렸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한정위헌을 결정했다. 당시 법원은 “헌재가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을 다시 판단(재판소원)하면서 사법체계를 흔들었다”며 반발했다. 법원은 GS칼텍스의 재심청구에 대해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