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되돌아 본 2012] ⑤ 한상대와 검찰
입력 2012-12-27 21:56
올해 대한민국 검찰은 난파선처럼 속수무책이었다. 안팎에서 몰아치는 파도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검찰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조짐은 상반기 검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검찰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2차 수사까지 하고도 청와대 핵심부는 건드리지 못한 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에 대한 수사는 땅의 실매입자라는 시형씨를 소환도 않고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부실·편파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검사 비리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검찰이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가 표출됐다. 지난달 19일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가 10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곧이어 서울동부지검 소속 전모(30) 검사가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윤대해 검사의 이른바 ‘위장 개혁’ 문자메시지 파문도 불거졌다. 김 검사 사건은 애초 경찰이 수사하던 것을 특임검사팀이 맡겠다고 나서면서 유례없는 ‘이중 수사’ 및 ‘사건 가로채기’ 논란이 빚어졌다. 이는 해묵은 검·경 수사권 갈등 양상으로 번졌다. 여론도 검찰 편이 아니었다.
검찰이 최악의 위기로 몰리자 한상대 검찰총장의 리더십에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한 총장은 임기 초기 특유의 카리스마를 앞세워 전임 김준규 총장의 중도 사퇴로 어수선한 조직을 정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그러나 특정 지역·대학 출신이거나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요직에 집중 배치하는 ‘기형적 인사’와 중요 사건에 대한 과도한 개입 등으로 검사들의 불만도 누적됐다.
궁지에 몰린 한 총장은 타개책으로 ‘검찰개혁’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핵심 중 하나는 대검 중수부 폐지였다. 특수부 검사들을 중심으로 반발 기류가 형성되자 한 총장은 최재경 전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전격 지시했다. 그러나 검사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초유의 검란(檢亂)으로 비화됐다. 한 총장은 후배들의 집단 용퇴 촉구에 “그럼 너희들도 같이 나가라”고 버텼지만 끝내 불명예 퇴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 총장 퇴임 후 검찰 내부 동요는 진정되는 분위기이지만 검찰은 이미 ‘개혁 대상 1호’의 처지로 전락했다. 검사들은 “새 정부가 검찰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고유 역할을 인정해 주는 선에서 개혁 방향을 잡길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한 총장의 낙마는 검찰의 추락이자 향후 검찰개혁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