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車 급발진사고 철저히 외면하는데… 도요타는 美서 사상최대 11억달러 보상
입력 2012-12-27 19:29
차량 급발진 사고로 집단소송에 휘말린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사상 최고액수의 보상금 지급에 합의했다. 급발진 피해자가 늘고 있지만 보상을 받은 소비자가 한 명도 없는 우리나라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도요타는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소송 원고 측에 11억 달러(약 1조1780억원)가 넘는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도요타의 결정에 원고 측 변호사 스티브 버먼은 “도요타 측과 힘겨운 법정싸움을 벌여왔다”면서 이번 합의가 “미국 내 자동차 결함 관련 소송 중 가장 큰 규모”라고 설명했다. 양측의 합의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승인을 얻는 즉시 발효되며 도요타는 지난 2009년 9월과 2010년 12월 사이 문제가 된 자사 차량을 구매했거나 임대한 전·현 소유자들에게 현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 밖에도 도요타는 최대 320만대에 ‘브레이크 우선 작동 장치’와 같은 특별 안전 시스템을 설치할 예정이다.
도요타 미국법인의 크리스토퍼 레이놀즈 법률고문은 “(문제가 제기된) 차량 전자 시스템에 이상이 없다고 밝혀지면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면서 “소비자를 우선한다는 핵심 원칙에 따라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집단소송 장기화에 따른 이미지 하락을 조기에 막기 위해 도요타가 합의에 나섰다는 평가도 있다.
이처럼 미국의 경우 급발진 피해자들이 보호를 받는 이유는 ‘제조물책임법(PL·product liability)’과 같은 강력한 소비자보호 제도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물책임법은 급발진 피해자가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자동차에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자동차 제조회사가 입증하도록 재판관이 명령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7월부터 제조물책임법을 시행했지만 급발진 피해에 따른 보호장치가 못되고 있다. ‘제조업자가 제조물을 공급한 때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결함 존재를 발견할 수 없을 경우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는 법 규정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가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 급발진 피해자 중에 소송을 통해 피해구제를 받은 소비자는 없다. 올 들어 급발진 사고 2건을 분석한 국토해양부도 “급발진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 자동차 제조사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한장희 구성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