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원로 자손들 권력·富 독점 ‘중국의 부르주아’… 블룸버그통신 축재실태 폭로
입력 2012-12-27 22:14
“저 거북이 새끼(태자당을 경멸하는 속어)들은 내 자식이 아니다.”
중국의 혁명원로 왕전은 1990년 베이징 군인병원 입원 당시 문병 온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를 평생 추구했던 그는 자신의 자손들이 금융 항공 컴퓨터 분야를 독점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을 경멸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경멸은 환멸이 됐을지도 모른다. 왕전의 아들 중 한 명인 왕쥔(71)은 중국 최대 국영 투자업체인 중신그룹과 석유·무기 업체 폴리그룹의 설립자이면서 홍콩에 부동산 업체와 금융회사, 전산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현재는 형제들과 함께 북서부 난니완에 16억 달러를 들여 초대형 중국 혁명 테마공원을 만들고 있다. 왕전의 딸은 홍콩에 700만 달러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스위스 기숙학교를 졸업한 손녀는 지난 8월 24일 페이스북에 디오르 핸드백과 발렌티노 황금 구두, 알렉산더맥퀸 팔찌 등 5000달러가 넘는 장신구를 걸친 사진을 올렸다.
중국 혁명원로의 후손, 즉 태자당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는 실태를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통신은 지난 8월 시진핑 총서기 가계의 축재 실태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중국에서 접속이 차단됐다. 이번 보도는 그 후속탄인 셈이다.
왕전과 같은 혁명원로들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도 공산당의 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는 엄격히 단속했다. 대신 신뢰할 수 있는 혁명 동지들이 권한을 나눠 가졌다. 그 결과 중국인들은 겨우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그 자녀들은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다.
블룸버그가 혁명원로의 자손과 그 배우자 103명을 추적한 결과 26명이 국영기업체의 최고위층에 있었고, 43명이 민간기업을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1980년대 국영기업 경영자가 된 뒤 90년대 부동산·석탄·철강 분야에 뛰어들었다. 요즘엔 금융시장에서 중국 경제의 세계화에 편승해 재산을 늘리고 있다.
왕쥔은 83년 인민해방군의 무기공장을 민영화할 때 이를 물려받아 이란 미얀마 파키스탄에 수출해 돈을 벌었다. 지금은 수단에서 고속도로를 닦고 중국에선 극장과 TV채널을 운영한다. 중국 골프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골프전문잡지에서 세계골프계 영향력 16위로 꼽혔다. 타이거우즈보다 높은 순위다. 왕전의 손녀는 중국 노동자의 반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장신구를 걸치고 다닌다. 혁명원로들이 비판한 부르주아 개인주의의 극치인 셈이다.
덩샤오핑의 사위 허핑과 양상쿤 전 주석의 사위 왕샤오차오는 수천만 달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행은 현재의 빈부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사회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임계치보다 50% 이상 더 높다고 분석했다. 89년 천안문사태 때도 시위대는 민주화와 함께 태자당의 처벌을 요구했었다. 혁명원로 보이보의 아들 보시라이의 부패에 중국 전역이 들끓고 지방관리의 비리에 반대하는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태자당에 대한 이런 반감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혁명원로 쑹런충의 아들 쑹커황(67)은 “우리 세대나 자식들은 혁명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도 부모 덕분에 수억 위안을 벌어들였다”며 “국민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