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재능 기부하는 KAIST 배상민 교수 “하나님이 주신 영감으로 디자인 했죠”
입력 2012-12-27 21:20
동양인 최초로 27세에 세계 3대 패션스쿨 중 하나인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의 최연소 교수가 됐다. 디자인하는 상품마다 기업의 매출성장으로 이어졌고 미국의 대표기업들은 앞 다퉈 기업의 로고 디자인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2005년, 13년간의 화려한 뉴욕생활을 청산하고 돌연 귀국해 카이스트(KAIST) 대학에 ‘사회공헌디자인연구소’를 만들고 나눔 상품을 디자인해 수익금 전액을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나눔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판매수익금 전액인 6억여원은 그동안 NGO 월드비전을 통해 국내 저소득층 230명 아동들의 꿈을 키워주는 교육사업에 쓰였다.
소비가 곧 나눔이 되는 ‘아름다운 순환’을 꿈꾸는 배상민(40) 교수의 이야기이다. 그가 2006년 시작한 나눔프로젝트는 첫 나눔상품 ‘USB나눔’을 선보인 이후 2007년 ‘MP3나눔’, 2008년 ‘LOVE POT 나눔’, 2009년 ‘HEARTea 나눔’을 내놓았다. 그는 나눔상품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한 번 받기도 힘든 세계 4대 디자인대회의 상을 무려 41개나 받았다.
그의 나눔은 계속된다. 다음 달 5차 나눔상품 ‘딜라이트(D’light)’ 출시를 앞둔 그를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8년간 나눔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그에게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느냐”고 묻자 “그건 주님의 부르심 때문”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성공한 산업디자이너이다. 내놓은 디자인마다 호평을 받았고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셨는데 이러고 살아서 될까’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산업디자인을 하면서 내가 아름다운 폐품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어요. 인간의 욕망만 부추기는 소비적인 디자인만 해온 것이 허망했고 그 어떤 상을 타도 기쁘지 않았어요. 3년 동안 새벽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지요. 기도 끝에 한국에 돌아가 주는 쪽도 받는 쪽도 행복한 가치 있는 디자인을 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월드비전으로부터 ‘나눔프로젝트’ 제안을 받았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멘” 하고 받아들였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에겐 ‘빚진 자’란 의식이 있다. 어린시절부터 가족들이 호스피스봉사와 교도소선교를 하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기에 그 자신도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빚진 마음을 갖고 살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디자인엔 상징성이 있다. 특히 미국 IDEA 은상을 수상한 ‘MP3나눔’은 육각형 큐브를 펼치면 나눔을 상징하는 십자가 형태의 목걸이가 된다. 5번째 나눔상품 ‘딜라이트나눔’은 전등갓의 형태에 따라 불빛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데, 하트모양이 될 때 가장 밝게 빛난다. 사랑의 마음을 나누면 사회가 밝아진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나눔상품은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액이 기부됩니다. 불필요한 제품을 동정심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하고 디자인도 예쁜 제품을 팔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지요.”
최근 그는 나눔프로젝트의 지원을 받고 있는 문규성(18·가명)군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문군은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교수님의 도움으로 꿈을 잃지 않았다”며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CEO가 돼 교수님처럼 이웃을 섬기며 살겠다”고 전했다.
대전 새로남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배 교수의 꿈은 양지에 있는 사람들이 음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면 사회가 밝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지에 있는 그들이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요. 끔찍한 ‘묻지마 범죄’ 같은 것은 우리의 삶만 챙기며 그들을 돌아보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나누고 살 때 사회가 밝아질 거라 믿어요.”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영감으로 디자인한다. “제가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성경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브살렐입니다. 출애굽기 31장2∼5절을 보면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고 순종하면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