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한강 얼음
입력 2012-12-27 18:59
‘작금의 추위로 박빙의 어름이 한자두께 이상으로 두터워젓다. 천연빙업자들이 칠십여명의 채빙인부를 총동원하야 五일부터 七일까지 채출한 어름이 약 二十七만관에 달한다.’
1935년 2월 9일자 신문기사다. 겨우내 한강 얼음이 시원치 않더니 입춘 이후 갑자기 추워져 3일 만에 얼음 1000여t을 생산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1928년 1월 13일자 신문은 ‘지난해 한강의 얼음이 채취 불가능하야 철원으로부터 가저왓기 때문에 얼음갑이 상당히 비쌋스나 금년은 얼음이 매우 싸게 되리라더라’라는 소식을 ‘혹한의 덕택, 한강 얼음풍년’이라는 제목 아래 전했다.
당시 한강의 얼음은 인기상품이었다. 갑오경장 직후 각종 개혁조치 속에 서빙고, 동빙고가 폐쇄되면서 태종 때 시작된 왕실의 독점이 없어진 게 계기가 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연빙업자’가 서빙고 인근 마포, 용산과 동빙고가 있던 두모포(옥수동) 일대에 우후죽순격으로 생겼다. 이들은 겨울에 한강 얼음을 산에 묻어두었다가 여름에 팔았다. 마포나루 조깃배와 생선장수들에게 한강 얼음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1949년 2월 8일자 신문기사다. ‘금년 한강 얼음이 여덟치밖에 아니얼어 천연빙 채취에 큰 지장을 주었다. 예년 한강에서 채취하던 천연빙은 五만톤이나 되든 것이 지난겨울에는 二만톤밖에 채취 못했다.’ 이 기사는 ‘매년 다량으로 조기잡이 계절에 수송용으로 사용되든 천연빙이 올해는 없다싶이될 형편이라 업자들의 걱정은 벌써부터 높아가고 있다’면서 ‘서울시가 2500만원을 들여 제빙회사를 만들기로 했다’고 끝맺고 있다.
한강의 얼음 채취는 6·25전쟁 이후 사라졌다. 서울시는 1953년 한강 얼음 채취를 금지한 뒤 가끔 허가를 내줬다. 피난민이 모여 인구가 늘었고, 한강물도 먹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기 때문이었다. 1957년 기사는 이렇다. ‘서울시가 올해 생선 보관용으로 얼음 2200t 채빙 허가를 내리었다. 음료용으로는 사용하지 못하나 여름철 시민위생에 적지 않은 걱정거리를 주고 있다.’ 동네 시장마다 얼음가게가 등장했던 때였다. 가정용 냉장고 보급된 후에는 이들도 사라졌다.
지금은 한강을 두껍게 덮은 얼음을 아예 볼 수 없다. 기후가 변한 탓인지, 한강 개발로 수심이 깊어져서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올해는 강추위 탓에 한강의 첫 얼음이 예년보다 20일 빨리 얼었다. 한강에서 얼음을 떼어다 팔았던 옛날을 생각하며 한파를 이겨내는 것은 어떨까.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