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화를 가라앉히는 법 : 화난 자기얼굴 거울로 보라

입력 2012-12-27 18:42


화에 대하여/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사이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아스. 그는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놓고 오디세우스와 벌인 사소한 결투에서 패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광란 끝에 자살하고 만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만 것이다. 신화 속 비극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화는 우리 일상을 갉아 먹는, 버려야 할 습관이다. 사소한 것에 화를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화에 관한 책이 나왔다. 저자는 2000년 전 로마의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BC 4∼AD 65). 스토아 학파의 대표자인 세네카는 동생 노바투스로부터 “화 가라앉히는 방법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책을 썼다. 동생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이다. 화에 관한 인류 최초의 책인 그의 저서는 화는 무엇인지, 우리는 왜 화를 내는지, 화는 인간의 본성인지, 화는 애초부터 싹을 자를 수 없는지 등을 다룬다. 또 동생의 부탁이었던 만큼, 화를 어떻게 억제하고 다스릴지 등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혹자는 화의 유용성을 주장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다. 적절히 사용하면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테면 전쟁에서 병사들의 화를 잘 활용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세네카는 “틀렸다”고 잘라 말한다. 화가 이성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더 이상 화가 아닌 다른 이름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화는 가장 난폭하고 파괴적인 격정이며 스스로에게 겨누어진 비수의 끝을 향해 덤벼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네카가 살았던 로마 제정 시대의 젊은 폭군 가이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가 대표적인 예다. 어릴 적 별명을 딴 영화 ‘칼리굴라’로도 잘 알려진 이 폭군은 즉위 초기 선정을 베풀었으나 점차 포악해져 잔혹한 독재정치를 펴다가 29세에 암살당한다. 이런 자기파괴적 작용 때문에 “화를 내어 이기는 건 결국 지는 것”이라고 세네카는 말한다.

세네카는 화는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그래서 의지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다고 말한다. 화라는 불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습관이 화를 부채질 하는 만큼 어려서부터의 양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선의 치유책으론 ‘유예와 숨김’의 두 키워드를 제시한다. 화나는 순간 자신에게 ‘잠깐만’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 플라톤의 일화가 흥미롭다. 어느 날 노예에게 화가 난 플라톤은 채찍을 휘두르기 위해 손을 치켜든 순간,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팔을 공중에 치켜든 채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를 본 친구가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을 때 플라톤은 말했다.

“화를 내고 있는 한 사내를 벌주고 있는 거라네.”

또 숨김을 강조하면서 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걸 최대한 억제하라고 충고한다. 소크라테스의 경우도 화가 나면 목소리가 낮아지고 말수가 적어졌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을 때 즉효 약은 뭘까. “화난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라”고 제안한다.

문득 궁금하지 않은가. 당대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왜 책 1권을 쓸 정도로 화라는 주제에 천착했을까. 그가 살았던 시대가 어지러웠던 탓일 게다. 로마의 제정은 제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부터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에 이르기까지 가히 폭정의 시대였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철학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 책은 그의 유배 시기 탄생했다.

세네카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정계에 입문하지만 음모에 연루돼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기 8년간 유배지로 보내진다. 이후 정계에 복귀한 뒤에는 네로 황제의 소년 시절 가정교사를 5년간 했다. 네로가 황제가 된 후에도 10년간 자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제자였던 네로 황제에 의해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책은 폭군 제자에겐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운명의 아이러니가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엔 대선의 후유증과 장기 불황으로 사회 곳곳에 휘발성 분노가 스며 있다. 지금, 여기의 누군가는 그의 책을 통해 위안과 조언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경숙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