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누나 빤쓰를 입어야 했던 아홉살 철수
입력 2012-12-27 18:42
내 빤쓰/글·그림 박종채/키다리
요즘 아이들은 상상을 못할, 엄마 아빠 어렸을 적 이야기다. 형제가 많아 밥상은 전쟁터 같았고 맛난 반찬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던 시절 얘기다. 형제까리 학용품과 옷을 물려 입는 건 당연했다. 속옷조차 물려 입은 집도 있었으니까. 주인공인 칠남매 중 막내 아홉 살 소년 철수도 그런 집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일이 벌어진 건 신체검사 하는 날. 남녀 모두 교실을 달리 해서 ‘빤쓰’만 입고 서 있어야 하는데, 친구들이 갑자기 철수의 빤쓰를 보고 웃어버렸다. 빤쓰에 빨간 나비 리본이 달려 있던 것. 누나의 헌 빤쓰를 고쳐 입었던 것이다. 놀림감이 된 건 당연했다.
집으로 돌아온 철수는 학교에 안가겠다고 떼쓰고, 그러다 아빠에게 혼이 난다. 그날 밤 철수는 꿈을 꾼다. 새 빤쓰와 새 난닝구를 입고 하늘 높이 나는 꿈을 말이다. 다음날 엄마가 재봉틀로 새로 만들어준 빤쓰에 철수는 화가 스스르 풀린다. 그건 강아지 그림이 붙은 남자 빤쓰였으니까.
자녀가 혼자거나 둘뿐인 요즘 세태와는 차이가 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내아이를 이어주는 끈이 있다. 바로 슈퍼맨이 된 것 마냥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하늘을 나는 철수의 모습이다. 그래서 새 난닝구와 새 빤쓰를 입고 싶어 하는 철수의 마음에 자연스레 공감을 하게 된다. 가족 사랑과 물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림책.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