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우리 세계문학전집은 식민시대의 것”
입력 2012-12-27 18:42
속물 교양의 탄생/박숙자(푸른역사·2만원)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의 한복판에 ‘양서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엘리트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었다고 말하는 등 ‘세계문학’에 흠뻑 빠져 있었다. 소설가 이광수가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레미제라블’ ‘테스’ 등을 꼽았고, 너나할 것 없이 세계문학전집 한 질쯤은 소장하는 것이 교양인의 필수품으로 인식됐다.
사람들의 관심은 진서(眞書)에서 원서(原書)로 옮아가고, 명작 원서를 찾아 읽는 것이었다. 원서가 문명의 기원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활’의 여주인공 카튜샤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구분될 정도로 원서는 세계문학 자체였다. 명작이란 이 세계 안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자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였으며, 교양이란 이 세계 안에 속해 있다는 보증서로 통용됐다.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인 저자는 식민지 근대의 풍경 속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유통되는 명작과 교양에 대한 욕망의 연원을 찾는다. 명작의 의미가 ‘좋은 책’에서 ‘유명한 책’으로 왜곡된 과정을 살펴본다. 출판시장이 불황인 가운데 세계문학전집의 인기는 여전하다. 저자는 “1000종 시대를 맞은 지금 우리의 세계문학전집은 식민지 시대의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