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로 할리우드 데뷔 배두나 “실험적인 영화에 좋은 역할… 제 인생의 한 획”
입력 2012-12-27 18:38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린 한국 배우는 많았다. 그 중에서도 배두나(33)는 가장 앞줄에서 달려가고 있다. 그의 성공적인 데뷔작 ‘클라우드 아틀라스’(1월 9일 개봉)는 1억2000만 달러(약 13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이다. ‘매트릭스’로 유명한 라나·앤디 워쇼스키 남매와 독일 출신 톰 티크베어 감독이 공동 연출했고 톰 행크스, 핼리 베리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배두나는 이 영화에서 비중이나 연기 측면에서 다른 이들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다. 2144년 미래의 서울에 사는 복제인간 손미 역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두나를 만났다.
행운은 어느 날 갑자기 왔다. 지난해 3월, 영화 ‘코리아’ 준비로 탁구 연습하러 가던 중이었다. 임필성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나야, 할리우드의 유명한 감독이 너한테 시나리오 보낸대.” 그게 워쇼스키 남매였다. ‘공기인형’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괴물’ 등 출연작을 보고, 개인적 경로로 배두나의 연락처를 수소문한 것. 그렇게 ‘클라우드 아틀라스’ 시나리오가 왔다. 매니저가 잠시 없던 시절이었다.
감독과의 첫 인사는 인터넷 화상전화인 스카이프를 통해서였다. 혼자 방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통역도 없었다. “와, 매트릭스 감독이다 하고 놀라고 있었는데 그들이 시나리오 봤니? 손미 역할 해볼래? 하고 싶으면 연기해서 테이프로 보내라고 했죠.” 오디션이었다. 친오빠가 비디오로 연기하는 걸 찍어 줬다. 할리우드 진출은 이렇게 조용히 시작됐다.
얼마 후 연락이 왔고, 감독의 사무실이 있는 미국 시카고에 가서 정식 오디션을 봤다. “정확히 6월 24일, 대전에서 ‘코리아’ 촬영 중에 전화를 받았어요. 9월 중순부터 촬영할 수 있어? 그럼 이제 네가 손미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싸’ 했지요.”
촬영이 진행된 독일 베를린에는 혼자 갔다. 스며들기 편했고 그들이 배두나에게 다가오기 편했다. 언어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었다. 미국 영어도 한국 토종 배우가 하기엔 어려운데, 감독들은 그에게 영국식 영어 발음을 원했다. 그냥 고등학교 때 영어 성적 좋고, 여행 가서 생활영어 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호된 연습이 시작됐다. 촬영이 끝났을 때는 감독과 얼싸안고 울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영어 실력을 보여줬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총 6개의 이야기가 얽혀진 영화다. 주요 배우 모두 1인 다역을 맡았고 배두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미 이외에 1973년도의 멕시칸 여자, 1949년 틸타 역도 해야 했다.
감독이 물었다. “너 조용하고 감성적인 것 같은데 스페인어를 따발총처럼 뱉어내야 하는 히스테릭한 멕시칸 여자 역할도 가능하겠니? 힘들면 다른 배우를 찾아볼게.” 그때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할 수 있다고 확 말해버렸다. 결론은 대성공. 말을 하지 않으면 배두나라는 걸 못 알아볼 정도의 변신이었다.
감독은 왜 배두나를 선택했을까. “감독이 제작진에 그랬대요. ‘쉬 이즈 프롬 어나더 플래닛(She is from another planet)’이라고. 그 얘기가 되게 감동적이고 신기했어요. 저에게 뭔가 다른 부분을 느끼고 선택해준 거죠.”
할리우드 감독과의 경험은 어땠을까. “정말 스케줄이 편했죠. 주말에 쉬고, 밤도 안 새고, 한참 전에 스케줄이 나오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워쇼스키 남매에 대해 그는 “속정이 있다”고 표현했다. “내가 울면 라나(워쇼스키)도 울었죠. 제가 기록자랑 연기하는 장면에선 모니터를 보러 가보니 감독이 이미 눈물을 닦느라고 티슈 두 통을 다 썼더라고요. ‘매트릭스’ 상상하면 SF의 대가 같은데 엄청 섬세하고 엄마 아빠 같았답니다.”
평소의 배두나는? “되게 보링(boring)한 사람이죠. 지루하게 살아요. 어떤 일에 미친 듯이 집중하고 흥미 떨어지면 완전히 놓는 사람이에요. 배우가 아닐 땐 게을러요. 그렇게 모아둔 에너지를 현장에서 다 쏟지요.”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