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지친 심신 힐링 에세이 열풍… 6가지 키워드로 본 2012 출판계

입력 2012-12-27 18:35


올해 출판계에는 ‘힐링 에세이’ 열풍이 거셌다. 청춘과 중년 할 것 없이 경제 위기에 지친 심신들은 치유의 에세이에 기댔다. 출판시장의 안전판인 자기계발서도 힐링의 외피를 입어야 팔렸다. 책은 현실을 위로했지만 정작 출판계는 그 한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출판계엔 어느 해보다 불황의 그림자가 짙었다. 2012년 출판계를 6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힐링 열풍… 밀리언셀러 에세이 등장=배경엔 좀체 나아지지 않는 경제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 30대는 물론이고, 노후가 불안한 5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고단하다. 자신을 성찰하고 상처받은 것을 치유해 새로운 힘을 찾으려는 독자들은 힐링 에세이를 찾았다.

이 기세에 에세이 분야에서 밀리언셀러가 나왔다. 혜민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지난 8월 100만부 판매를 돌파해 현재까지 140만부가량 팔렸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200만부를 넘어섰다. 그의 두 번째 에세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시인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도 힐링 열풍을 타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전자책 시대… 19금 로맨스, 웹툰 날개 =전자책 단말기와 스마트폰 확산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바일 독서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출판계는 올해가 전자책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해라고 자평한다. 전자책 시장 최대 화제작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열풍이 판매량을 견인했다.

미국에서 2000만부 넘게 판매된 그레이 시리즈는 ‘엄마들의 포르노’라고 불리며 주부들을 끌어들였다. 예스 24에 따르면 통상 전자책 비중은 종이책의 6%이지만 그레이 시리즈의 경우 34%에 달했다. ‘19금 로맨스’ 외에 일반 소설, 자기 관리 책 등이 전자책 시장에서 인기다. 전자책 인기를 업고 부상한 또 다른 장르는 웹툰이다. 웹툰 인기는 단행본으로 이어졌는데, 특히 윤태호의 ‘미생’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인문으로 포장한 자기계발서… 키워드는 ‘마흔’ ‘정리’=처세서나 자기계발서가 인문의 옷을 입었다. 지난해부터 일었던 손자병법과 논어 등 고전 자기 계발서 열풍이 올해까지 이어졌다. 특히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처럼 ‘마흔’이라는 연령을 내세워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인생에 쉼표를 찍는 이들을 어루만지는 모양새를 취했다.

397세대들이 마흔으로 넘어가면서 40대를 겨냥해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마흔의 서재’ 등 다양한 책이 나왔다. 또 다른 키워드는 ‘정리’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마흔 살의 정리법’ 등이 인기를 끌었다.

◇출판계 불황… 오프라인 이어 온라인 덮쳐=서점과 도서 도매 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국내 최대 도서 총판업체인 ‘수송사’가 1월 최종 부도 처리됐고 8월에는 35년 역사를 자랑하던 총판 ‘학원서적’이 폐업을 선언했다.

또 대구 플러스북, 프라임문고 (서울)강변점·신도림점, 일산 태영문고, 광주 충장서림 등 서점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렸다. 서점 붕괴 현상은 온라인 서점으로 확산됐다. 온라인 서점 5위를 달리던 대교 리브로가 경쟁에 밀려 지난 11월 문을 닫은 것이다. 1997년 첫 등장 이래 호황을 누리던 온라인 서점은 올 들어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출판계에서는 출혈 경쟁 자제 호소가 함께 도서정가제 시행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선 관련 책 봇물… ‘안철수의 생각’ 대박=연말 대선을 앞두고 잠룡들이 너나없이 책을 냈다.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등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출간했지만, 지지자들의 출간 경쟁도 치열했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간 출판 대결도 뜨거웠다.

공전의 히트는 ‘안철수 현상’을 낳으며 대선 출마 여부가 초미 관심사였던 안철수의 ‘안철수의 생각’이다. 지난 7월 발매 5일 만에 10만부가 팔리는 등 대한민국 출판시장의 모든 기네스 기록을 갈아 치웠다. 현재까지 70만부 이상 팔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는 저서를 내지 않았다. 확실한 저서를 통해 지지 기반을 갖춘 후보가 당선됐던 역대 대선의 공식이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은교’ ‘해를 품은 달’ 등 영화 속 원작소설 인기=올해 가장 많이 판매된 소설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원작이다. 정은궐이 쓴 이 책은 드라마 방영 내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박범신의 ‘은교’ 역시 동명 영화가 상영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았다. 지난 가을 류승범 이요원이 주연한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의 원작 일본 소설 역시 영화 개봉과 함께 관심을 끌었다. 원작소설뿐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이 읽던 소설도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주인공이 읽던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김연수의 ‘원더보이’가 그런 예들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