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예술작품서 우리 역사를 들여다 보다… ‘한 폭의 한국사’

입력 2012-12-27 18:39


한 폭의 한국사/손영옥/창비

#1. 고려청자에 무늬가 새겨지기 시작한 건 12세기 후반이었다. 사람들은 청자의 맑고 은은한 표면에 부귀영화의 소망을 담아 모란이나 덩굴을 그렸다.

그런데 13세기 들어서면서 유행하는 무늬가 바뀌기 시작한다. 구름, 학, 들국화, 매화…. 여기엔 당시 권력을 쥔 무신들 때문에 관직의 길이 막혀버린 문인들의 한숨이 녹아 있다. 문인들은 이 같은 무늬의 청자를 곁에 두고 보면서 자연을 꿈꿨다. 위로와 안식을 얻고자 했다.

#2.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1545∼1611)의 ‘고사탁족도’를 본 적이 있는지. 이 그림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 선비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휴식을 취한다고 보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어둡다. 옷차림도 앞섶을 풀어헤친 채 흐트러져 있다. 도대체 그림 속 선비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비밀을 알려면 이경윤이 살았던 조선 중기 시대상을 파악해야 한다. 작가가 살던 조선은 선조와 광해군이 통치한 시기. 당쟁이 끊이지 않았고 임진왜란 탓에 나라는 쑥대밭이 된 시절이었다. 즉, ‘고사탁족도’엔 세상사를 잊고 자연 속에 숨고 싶다는 이경윤의 소망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국민일보 문화생활부 기자로 활동 중인 저자는 우리 조상들이 남긴 예술작품을 통해 ‘한 폭의 한국사’를 펼쳐 보인다. 작품의 가치에 작품에 얽힌 시대상을 포갠 이야기는 만화경을 들여다보듯 흥미진진하다.

이야기 주요 소재는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국사를 관통하는 16개 유물과 예술작품이다. 책은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토대로 고래를 잡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수렵 생활을 그려낸다. 거대한 돌을 운반해 만든 고인돌 유물에서는 청동기 시대 막 생겨난 계급 문화를 엿본다. 이 밖에 고려 공민왕의 ‘이양도’를 통해서는 공민왕과 아내 노국 대왕 공주와의 로맨스를, 만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조선 시대 ‘일월오봉도’를 통해서는 조선 건국의 이념과 지도층의 사상을 들려준다.

미술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한국사는 이색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역사를 암기 과목으로만 여겨 단편적인 정보만 달달 외우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안내서다.

책은 200여 쪽 분량이지만, 한국사의 얼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우리 역사의 극적인 순간들은 거의 빠짐없이 전해준다. 우리네 예술작품의 비경을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