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준선] 배임죄에 경영판단 원칙 도입해야
입력 2012-12-26 19:13
‘배임죄는 언제나 통한다!(StGB passt immer!)’ 배임죄를 최초로 입법한 독일에서 학자들이 ‘배임죄는 걸면 걸리는 범죄’라는 것을 빗대 한 말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불분명한 점을 지적하는 형법학자들이 다수 있으며, 법원 판결문을 보더라도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률을 잘 알지 못하는 기업가 처지에서는 배임죄만큼 무서운 죄목도 없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반하면 배임죄가 된다. 자기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의 사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배임죄로 처벌받는다. 회사 임원이 자신의 직무를 하지 않는 것도 배임이다. 이론상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면 배임이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배임이다. 아무 일도 안 해도 배임죄에 걸릴 수 있다.
배임죄의 본질은 배신이다. 배신은 윤리적 문제이며, 형사처벌보다는 민사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순히 비윤리적인 행위와 형사처벌을 해야 할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 모호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어떤 사안에서 배임죄가 성립될지 미리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배임죄로 기소되더라도 무죄로 판결된 경우가 다른 범죄에 비해 5배나 많다.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바 없었더라도, 실제 손해가 없었어도 ‘손해의 위험’만 있으면 배임죄는 성립한다.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더욱 고약한 것은 배임죄 양형기준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배임 규모가 50억원 이상인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규모의 확대와 통화가치의 하락 등으로 5억원을 넘는 경제 행위는 매우 흔하다. 반면 복잡한 경제적 활동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되어 있으며, 시장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첨예한 경쟁으로 손해 발생의 위험은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정 법안은 문제가 많다. 배임 규모가 300억원 이상일 때 무기징역 또는 1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하려 한다. 금액이 300억원이 넘는다고 더 악독한 배신을 한 것도 아니다. 서푼어치 배신을 하든 300억원어치 배신을 하든 기업인의 마음가짐은 생존을 위하여 전투에 임하는 마음일 것이다. 담대한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가일수록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앞으로 한국의 기업가는 중형을 받지 않도록 5억원 미만의 경제활동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300억원을 넘으면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낼 가능성이 크다. 대형 사업의 실패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위험이 커진 경우 배임죄는 더 가까이 다가온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투자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고, 그 임원들은 대부분 배임죄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비행(非行)이 도를 넘은 임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임원은 성실하게 근무했었다. PF가 문제가 된 것은 임원의 배임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 때문이다.
배임죄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기업인을 배임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업가의 경영판단에 대해 상법상 특별배임죄 처벌을 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본래 영미법상의 원칙이지만, 독일도 우리의 회사법에 해당하는 주식법 제93조에 이를 도입했다.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게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절하게 도입하여 기업가정신을 북돋아야 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