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경제민주화 시동] “대기업 고통분담 나서라” 윤곽드러난 ‘근혜노믹스’
입력 2012-12-26 21:49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상생경제를 위한 변화를 촉구하며 대기업 회장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지난달 8일 대선후보 자격으로 경제 5단체장을 만났을 때보다 더 강도 높은 ‘재벌개혁’ 수준의 주문이 쏟아졌다. 회장들은 새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당선인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다.
박 당선인은 26일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단,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임원단과의 티타임에 이어 마지막 일정으로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에서 대기업 회장단과 40여분 동안 만났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겸 GS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 16명이 참석했다. 당에서는 진영 정책위의장과 조윤선 대변인이 배석했다. 티타임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며 박 당선인은 “저만 웃고 찍는 것 같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박 당선인은 모두발언에서 “지난 이틀간 우리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어려운 분들을 찾아뵈었다. 쪽방촌에도 다녀오고, 기초생활수급자 가정도 다녀왔다”며 “이번 겨울이 다른 어느 해보다 추운데 그분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실제 기온보다 더 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저는 오래 전부터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중요한 경제정책 기조로 삼아 왔고 민생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 경제의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만 한다. 정말 할 일이 많다”고 강조하며 본격적인 주문에 앞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어 대·중소기업 상생, 구조조정·정리해고 지양, 골목상권 보호 등을 골자로 하는 ‘근혜노믹스’의 윤곽을 드러내며 대기업이 고통 분담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허 회장은 축하 인사를 건넨 뒤 “당선인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저희가 힘과 뜻을 모아드리고자 한다”며 “학력·성별·연령·장애 등 차별 없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극복하고, 공정하고 투명하며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는 양측이 공감했고, 박 당선인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 지원을 약속했다. 허 회장이 먼저 “불행히도 요즘 세계경제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며 “잘 살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세계 속에 우뚝 일어섰던 실사구시의 국민정신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에 박 당선인은 “정당한 기업 활동과 미래 성장동력,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는 적극 지원하겠다.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 투자나 경영이 위축된다는 말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진 비공개 간담회는 기업 활동과 관련된 회장단의 제안·요청에 박 당선인이 의견을 밝히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문화·복지 사업에 기업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회장단의 요청에 박 당선인은 공감하며 “특히 소외계층의 문화 갈증이 크다. 앞으로 어떻게 지원할지 의논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분야별로 경쟁력이 있지만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대기업이라도 국가가 지원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기존 순환출자 제한의 역기능을 우려하며 다른 방안을 모색해 달라는 부탁에는 박 당선인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조 대변인이 전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