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여백’에 그린 시공의 흔적들… ‘땅끝마을’ 해남에서 만나는 다섯 벗의 매력

입력 2012-12-26 17:48


땅끝마을 해남에서는 끝이 시작이다.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임진년의 해가 서쪽 수평선으로 가라앉으면 계사년의 해는 동쪽 수평선에서 화려한 해돋이를 준비한다. 끝과 시작, 시작과 끝의 시공이 공존하는 땅끝마을 해남은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땅이기도 하다. 고정희와 윤선도의 시어(詩語)가 300년 세월을 뛰어넘어 들판과 바다를 노래하고, 가창오리는 8500만 년 전 공룡이 뛰어놀던 갯벌에서 우아한 군무를 선보인다.

‘칠월 백중날/ 고향집 떠올리며/ 그리운 해남으로/ 달려가는 길/ 어머니 무덤 아래/ 노을 보러 가는 길/ 삼천리 땅 끝/ 적막한 물보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마음을 주다가/ 문득 두 손 모아/ 절하고 싶어라/ 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 무릎 꿇고 남도땅에/ 입맞추고 싶어라’

남도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고향 같은 느낌이다. 그 중에서도 땅끝마을인 전남 해남은 이곳 출신 고정희 시인이 ‘남도행’에서 노래한 것처럼 무릎 꿇고 입 맞추고 싶을 정도로 정감이 가는 고장이다. 늙은 어미의 젖가슴처럼 펑퍼짐한 구릉 사이로 난 황톳길을 걷다가 만나는 해남의 자연이 어릴 적 벗처럼 반가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해남의 벗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五友歌)’에 등장하는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이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로 시작하는 오우가는 고산이 해남 금쇄동에 은거할 무렵에 한글로 지은 연시조.

첫 번째 벗인 수(水)는 대흥사 계곡의 유선여관 앞 계곡에서 기다린다. 대흥사 매표소에서 유선여관까지 1.5㎞는 편백나무를 비롯한 고목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 나무터널이 끝나는 곳에 100년 역사의 전통한옥인 유선여관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서편제’에서 대갓집으로 묘사된 유선여관은 유봉(김명곤)이 춘향가를 부르던 곳. 별이 빛나는 밤에 유선여관 앞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오우가의 시어처럼 맑고 청아하다.

여덟 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두륜산(703m)은 오우가의 두 번째 벗인 석(石)을 대표한다. 소백산맥이 남쪽을 향해 달리다 해남반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우뚝 솟은 두륜산은 경사가 완만한데다 정상 주변에는 수석을 닮은 바위봉우리들이 우뚝 우뚝 솟아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절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오우가의 세 번째 벗인 송(松)은 해남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해남 윤씨 종가인 녹우당 뒷산의 낙락장송과 녹우당 앞 백련지의 소나무는 평생을 유배와 은둔으로 보낸 고산의 삶을 상징한다. 겨울배추가 초록색 등고선을 그리는 구릉에서 독야청청 하는 소나무와 땅끝의 송호해변 소나무들은 혹독한 바닷바람에 더 당당하고 계절이 바뀌어도 푸른색을 잃지 않는 남도의 선비를 닮았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네 번째 벗 죽(竹)은 고정희 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삼산면 송정리에 위치한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남도의 여느 농가처럼 집 뒤꼍에 푸른 대숲이 펼쳐져 있다. 주인 잃은 서재에는 빛바랜 책들이 빼곡하고 꽂혀 있고, 새로 지은 화장실에는 1991년 지리산 등반 중 급류에 휩쓸려 43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그녀를 그리워하는 방문자들의 글도 붙어 있다. 고정희 시인 생가에서 3㎞ 떨어진 삼산면 봉학리의 김남주 시인 생가에도 대숲이 자리하고 있다. 초가집인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는 ‘조국은 하나다’ 등 시비 몇 개가 세워져 있다. 췌장암으로 사망한 시인을 그리워하듯 대숲은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다.

오우가의 마지막 벗인 월(月)은 땅끝마을에서 만나야 운치가 있다. 한반도 육지의 남쪽 끝인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는 땅의 시작이자 끝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북 온성까지를 이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또 해남 땅끝은 전남 강진 나주, 광주, 전북 완주 익산, 충남 논산 공주 천안, 경기도 평택 수원, 서울 남태령을 거쳐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삼남길의 끝과 시작이기도 하다.

땅끝의 본래 지명은 ‘토말’이다. 송지면 송호리 땅끝에 솟은 사자봉(156m)에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세워지고 전망대에 오르는 모노레일이 개통되면서 한적하던 반농반어 마을은 해남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신했다. 사자봉 정상에 위치한 땅끝전망대의 높이는 40m. 엘리베이터를 타고 봉화를 형상화한 9층 전망대에 오르면 남도와 다도해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땅끝전망대 남쪽으로는 윤선도가 살던 보길도를 비롯해 백일도 흑일도 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서쪽으로는 밀매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제주도의 한라산도 선명하게 보인다.

땅끝마을의 바다와 하늘을 붉게 채색한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나면 송지면 대죽리의 물 빠진 갯벌은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육지와 연결된 죽도는 검은색으로 침잠한다. 그리고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고정희의 시처럼 암청색으로 짙어가는 텅 빈 하늘에서는 오우가의 마지막 벗인 달이 쓸쓸한 풍경화를 그린다.

해남=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