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새 정부의 국방정책

입력 2012-12-26 19:11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군(軍)이 개혁 대상이 돼 난타당한다. 시간이 흐르면 거창했던 국방개혁안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내용은 차이가 없는데 외피(外皮)만 달라진 방안들이 새로운 개혁안으로 등장하기 일쑤다. 이번엔 또 어떤 국방개혁안이 나올지….” 지난 주말 만난 한 군 원로가 한 말이다. 국방장관을 역임한 그는 “전(前) 정부가 세운 계획을 뒤집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며 “일관되게 진행돼 구체적인 결실이 나와야 개혁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바뀌고 국방장관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국방개혁안들이 반복되는 개혁 구호에 대한 피로감만 더해주고, 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잃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이번 정부 들어 ‘국방개혁 2009∼2020’ ‘국방개혁 기본계획 2011∼2030(국방개혁 307)’ ‘국방개혁 2012∼2030’ 등 3개의 개혁안이 발표됐다. 그 때마다 군 수뇌부는 이번 개혁안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막상 개선된 부분에 대해 물으면 제대로 답해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국방개혁안들은 대부분 성과를 얻기까지 긴 시간이 요구된다. 한반도 안보 정세가 갑작스레 변해 단기적으로 수정할 사안이 발생할 수 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가 2012년 4월 17일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연기된 것이 그 사례다. 하지만 국방개혁안의 틀 자체가 자주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 정부가 국정을 운영하게 될 5년이 길어 보이지만 군이라는 거대 조직에 의미 있는 변화를 주기에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새 국방개혁안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기존 개혁안 가운데 5년 안에 달성할 수 있는 안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상부 지휘구조 개편처럼 논란이 돼 온 사안은 군 내 의견 수렴을 더 거칠 필요가 있다. 또 대통령 선거 시 내놓은 공약이라도 현실성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약속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박근혜 당선인 입장에서는 공약을 모두 지키고 싶겠지만 공약은 희망사항일 수 있다. 어떤 사안을 실천에 옮길 것인지는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해야 한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개선 사항을 수립하고 5년 내내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실효성 있는 개혁을 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미국에서 한반도로 건너와 키리졸브·독수리훈련에 참가했던 미군 신속기동여단 ‘스트라이커 부대’는 에릭 신세키 전 육군참모총장의 작품이다. 이 부대는 2007년 이라크에 처음 파견된 이래 아프가니스탄 등 주요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고전하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미국 보훈부 장관인 신세키 예비역 장군은 1999년 참모총장에 임명되자 세계 어느 곳에든 24시간 내에 미군을 파견할 수 있는 강한 기동력을 갖춘 신속대응여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 이라크에 파견될 육군 규모를 놓고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과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해 퇴임할 때까지 4년 내내 스트라이커 부대 육성에 공을 들였다. 반대가 없지 않았지만 재임 초기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본 것이다.

국방개혁안이나 당선인 공약에서 우수 장교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쉽다. 미군 등 다른 나라 고위 장교들의 경력을 읽어보다 놀랄 때가 적지 않다. 군 교육기관은 물론 일반 대학에서 연수를 하거나 학위를 받은 경우가 많아서다. 장교들이 전략기획과 작전기획 능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재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군은 몇 년 전부터 초급장교들의 국방대학교 교육이나 민간 대학 위탁교육을 대폭 줄였다. ‘유형전력’인 전력 증강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무형전력’인 인재를 차근히 길러내는 일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