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엔 금이 최고”… 신흥국 중앙銀 ‘골드 러시’
입력 2012-12-25 19:11
한국은행을 비롯한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골드 러시’를 벌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길어지자 안전자산인 금 보유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이 대규모 양적완화에 들어가면서 달러·엔 등 기축통화(국제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어 금의 매력은 한층 부각되고 있다. 금은 어떤 상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앙은행 투자자’ 덕에 내년에도 고가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25일 세계금위원회 등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 2년간 금 70t을 사들였다. 지난해 7월 25t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15t을 구입했다. 올 들어서는 7월 16t, 지난달 14t을 매입했다. 금 매입에 쓴 돈은 총 36억8034만 달러(3조9500억원)에 이른다.
한은뿐만 아니다. 신흥국 중앙은행들도 금 매입에 뛰어들고 있다. 터키는 7월 44.7t, 10월 17.6t을 사들였다. 터키가 지난 2년 동안 확보한 금은 204t에 달한다. 멕시코와 러시와도 지난해부터 각각 117t, 98.3t을 구입했다.
주요 신흥국 중앙은행이 금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기축통화’의 자리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기축통화가 무너지면 금이 기축통화 역할을 일부분 맡게 된다. 위기에 대비해 쌓아둔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유로, 엔 등 기축통화 가치가 추락하면 안전자산인 금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금은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이 국제 원자재가격 등을 자극하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악의 경우 달러 대신 금을 주고 원유를 수입하면 달러화 가치 하락에 따른 원유가격 상승분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외환보유액 중 금 비중이 70%를 넘지만 신흥국은 1%가 채 되지 않는 국가가 많아 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측면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면서 투자 다변화 차원에서 금 매입을 늘리는 추세”라며 “선진국 양적완화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서도 금은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금 투자에 따른 이익도 짭짤하다. 한은은 최근 2년 동안 금 투자로 650억원가량의 평가이익을 봤다. 한은은 1트로이온스(31.1g)당 평균 1635달러에 금을 샀다. 지난 24일 국제 금값(1트로이온스당 1662달러)과 현재 환율을 대입해 계산하면 652억3106만원가량 번 셈이다.
신흥국 중앙은행의 ‘골드 러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손재현 대우증권 선임연구원은 “대부분 신흥국은 외환보유액에서 금 비중이 여전히 낮은 편”이라며 “선진국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달러·엔·유로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금 인기는 내년에도 여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석진 동양증권 연구원은 “각 중앙은행의 골드러시가 이어질 수밖에 없어 국제 금값은 내년에도 점진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