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움직일 수 없는 결과는 수용하자
입력 2012-12-25 18:37
사람들은 원치 않는 일이 생겼을 때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이라는 단계를 거쳐 수용에 이른다고 한다. 바꿀 수 없는 결과가 나왔을 때 바로 수용하고 그 결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면 삶이 훨씬 명쾌해질 것이다. 앞의 네 단계를 차례차례 다 거치면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인생이 피폐해진다.
18대 대선이 끝났다.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노인들의 무임승차를 막자, 부정선거가 분명하니 유엔에 청원을 하여 재선거를 하자, 전자개표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검표를 하자며 들썩이고 있다.
일부 젊은 세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SNS에서는 세대와 관계없이 선거 결과에 실망감을 표하며 이 나라는 망했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 중에 문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책을 몇 권씩 낸 작가라면 바로 수용의 단계로 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심지어 이 나라를 나치에 비유한 작가도 있었다.
이런 행태에 대해 소설가이자 화가인 이제하 선생이 페이스북에 ‘작가의 현시욕’이라는 글을 남겨 따끔하게 비판했다. 이제하 선생은 “작가나 시인이 정치적 해프닝에 가담하는 것은 자기 작품에 대한 열등감이나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작품이 곧 자기 현시욕의 발현이요 결과인데 그게 꿀리니까 몸을 뒤트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내가 나서면 20만, 30만쯤의 유권자 표를 몰아올 수 있다고 장담하다 망신당한 작가, 대중소설 콤플렉스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천방지축 남의 봉창이나 두들기는 아무개건 모두 해괴하고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다”고 결론 내렸다.
2012 대선 결과에 대한 리뷰 기사를 청탁받고 취재에 나섰을 때 “뜨겁게 지지했는데 실망스런 결과가 나왔다. 이제 아무런 관심도 기대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 놀랐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다름 아닌 정치가 있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실망을 많이 내뿜으며 길게 분노하기보다 빨리 공정한 감시자로 나서서 함께 걸어가자는 권유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비단 선거결과뿐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결과는 빨리 수용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다음 발전방안을 찾아야 다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세월은 살같이 빠르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세상일에 그렇게 날을 세울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