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선거 이후 ‘이상한’ 현상

입력 2012-12-25 18:37


이상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난 일로서는 말이다. 48%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저토록 실망하고 헤매는 것, 참 드물고 이상한 일이다. 물론 정치적 지지율을 두 정당이 나눠 갖는 경우에 근소한 차이로 정권 잡기에서 졌을 때 그 집단 심리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이길 수 있었다는 확신이 강한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선거에서 졌다고 정당의 작동 시스템이 저리도 흔들릴 수 있단 말인가.

안다. 이 사회에서 조금만 깊게 사회 현상과 정치 현실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선거 이후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이 왜 그런지 말이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까닭이다. 투표율도 높았고 거기에서 48%나 지지를 받은 정당을 누가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정도 되는 정당에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란 것이 민주주의 정치에서 늘 하나의 과정이요 계기일 뿐 정치는 계속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터다. 선거란 것이 말하자면 하나의 게임이요, 게임이란 것이 이겨야 좋지만 질 수도 있는 것이요, 다음 게임이 또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게 민주주의다.

선거에서 질 수도 있는 법이거늘

한 번 게임에 모든 걸 걸면 게임이 아니라 도박이요, 도박도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다. 잘못하면 판 전체를 깨고 양쪽 다, 아니 관련된 모든 사람과 집단이 한꺼번에 불행해질 수도 있는 몹쓸 도박이 된다. 후진국에선 군사쿠데타도 일어난다. 후보로 나온 사람을 비롯하여 선거에 연관된 어떤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에서는 이번 선거에 인생 전체가 걸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개인 사정이다. 사회 전체와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큰 틀에서 이른바 ‘올인’은 민주주의에서 반칙이다.

이 문제와 연관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대선에 올인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남북의 분단 상황이다. 자유 민주주의와 지금까지 이뤄놓은 경제적 안정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이라는 변수는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늘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문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수로 바꿀 수 있느냐다.

법치적 자유 민주주의와 상생의 시장경제가 탄탄해질수록 이 나라는 성숙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체에서 올인 심리 상태에 고착된 집단의 비율이 적절한 선에서 관리돼야 한다. 쉽게 말하면 세상이 두 쪽 나도 나는 이쪽이다 하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수 대 진보라고 표현하는 (이제는 이 오랜 표현이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많지만) 그런 양극 집단을 대략 30% 정도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머지 집단이 이 나라의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이번에는 이쪽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잘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하면서 다음 선거에서 어떤 쪽을 밀어줄지 판단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것은 사회의 기본적 질서가 ‘선거 정치판’에 휘둘리지 않는 일이다. 특히 법치의 구조가 선거 결과에 따라 휘청거리지 말고 올바르게 작동되는 일이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이 그 분야 고유의 일거리와 가치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통속적 정치판’의 들러리가 되지 않는 일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찬가지다. 가까스로 이긴 정당이 어떻게 마음대로 밀어붙일 수 있단 말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물론 민주주의도 끝나지 않았다. 법치적 민주주의, 상생의 시장경제, 인도적 인륜도덕을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이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생정부’의 과제일 테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