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워싱턴의 한국경제 걱정

입력 2012-12-26 00:08


미국 워싱턴 특파원이 챙겨야 할 주요 행사 중 하나가 각종 싱크탱크들이 수시로 개최하는 한국 관련 세미나다. 특히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등 도발을 하거나 한국의 총선이나 대선 전후에는 ‘장이 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비슷비슷한 내용에다 발표자들도 중복된 세미나, 전문가 간담회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실제 가 보면 ‘거창한’ 주제에 대해 그 소리가 그 소리인 경우도 많아 과대평가돼 있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발표자인 한반도 전문가는 물론 의원 보좌관, 중국·일본 기자 등 한반도와 동아시아 관련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한국에 대한 워싱턴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로서 가치가 적지 않다. 그동안 한국 관련 세미나·간담회 주제는 크게 보면 외교·안보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동향, 북한 인권, 한·일 간 독도 분쟁, 북한 핵·미사일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의 국내 문제 특히 경제 관련 이슈에 대한 워싱턴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한국의 대선에서 청년실업·내수부진과 더불어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부터다.

예컨대 20일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한국 대선 평가회에서 조지타운대 빅터 차 교수는 가계 빚 부담을 차기 정부의 주요 과제로 꼽았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미국의 한 재무부 공무원이 ‘세계경제 부진 속에 차기 정부는 양적 성장과 재벌개혁 등 경제의 질을 다루는 정책 중 어디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이 소극적인 이유와 향후 참여 전망을 묻는 질문도 나왔다.

주로 외교·안보 문제에만 천착해 온 발표자들은 허를 찔린 기색이 역력했다. 답변이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 외교협회(CFR)의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솔직하게’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답변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워싱턴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논의 수준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올 초만 해도 ‘일본의 부진에 비해 한국경제가 이처럼 고속 성장을 이어가는 비결이 뭐냐’는 등 미국 주요 싱크탱크들의 한국전문가들이 내놓는 한국경제에 대한 장밋빛 평가일색이어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당시는 이미 양극화와 골목상권 붕괴 등이 국내에서 핫이슈가 된 때였기 때문이다.

한 미국인 지인은 ‘한국경제 상황이 정말 좋은데 자살률은 왜 높으냐’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워싱턴 조야의 한국경제에 대한 시선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의 ‘깜짝 실적’과 몇몇 양호한 거시 경제지표에만 꽂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이제 그런 경향이 바뀌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한 연구자는 “박근혜 당선인이 2년 이내에 피부에 와 닿는 경제개혁 조치를 취하거나 경기가 확연히 나아지지 않으면 새 정부가 일찍부터 정치적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덧붙여 그는 경제에 비하면 외교 문제는 새 정부에 큰 도전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어떻든 내년에는 워싱턴 싱크탱크들의 세미나에서 경제학자들의 한국 관련 리포트를 청취할 일이 늘어날 것 같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