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동원] 국난 극복엔 보수·진보 없다
입력 2012-12-25 18:37
대선 후유증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어 자칫 국론분열로 비화할까 우려된다. 대선 후보와 정당에게는 승리와 패배가 엇갈렸겠지만 국민에게는 이긴 자도 진 자도 없다. 선장이 누구든간에 보수든 진보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의 배를 타고 미래로 가고 있다.
더구나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고,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거센 파고가 몰아치고 있는 깜깜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한 선장이 아니라고 해서 배가 침몰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다음 정부의 향후 5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되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미래의 문제를 직시하고 험난한 세계경제와 국제정치의 파고를 넘어 선진국이란 다음 항구에 안착하는 데 국력을 모아야 한다.
한국경제는 시간에 쫓기고 있다. 한국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지 또는 중진국 함정에 빠질 것인지는 앞으로 길어야 7∼8년, 특히 앞으로 5년간 새 정부의 지도력과 정책에 달려 있다. 그 이유는 경제활동가능인구 비중이 현재 73.1%에서 2020년까지는 71.1%로 완만하게 낮아지지만 그 이후에는 2030년 63.1%, 2040년 56.5%, 2050년 52.7%로 급속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2020년 이후에는 고령화에 수반되는 비용이 급증하기 때문에 성장잠재력을 키울 여력이 없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일반 정부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비율은 37.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07.9%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이어서 성장이든 복지든 어느 정도 재정 확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여력을 가지고 있다. 차기 정부는 국민 통합과 민생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민생의 관점에서 차기 정부가 당면하게 될 경제정책 과제는 경기침체 장기화 대책, 민생 대책, 성장잠재력 제고 대책으로 집약된다. 민생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도 경기침체 장기화를 방치할 수 없고, 민생 문제를 구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저임금-저생산성 산업의 구조 개혁이 시급한 과제이며, 장기적으로 민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되도록 성장잠재력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차기 정부의 성공 여부는 재정 운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첫째, 이 재정 여력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 둘째, 한정된 재원을 세 가지 목표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셋째, 한정된 재정 지출의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 특히 경제주체 간 고통 분담과 기득권 재조정에 대한 합의 정도에 따라 재정 지출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보수·진보 또는 노소를 가르지 않고 국력을 결집해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위대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고령화의 부담이 닥치기 전에 경제 구조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시간의 절박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1998년 외환위기만큼이나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차기 정부가 이 역사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정권의 책임 차원을 넘어 다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진입을 넘보지 못하고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는 역사적 좌절이 될 것이다. 현재 시점을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인식한다면 경제주체들은 기득권과 계층적 이해를 넘어 고통 분담과 국력 재조직에 합의할 수 있다.
어떤 정권이냐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역사적 과제를 외면하고 보수나 진보 또는 노소를 편 가르는 데 국력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
김동원(고려대 초빙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