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제 있어도 ‘택시법’ 통과시키겠다는 국회
입력 2012-12-25 18:37
차량수 감축하고 서비스 개선 등 자구노력이 먼저다
여야가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일명 택시법)을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태세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정부가 택시·버스업계와 합의하지 못하면 27∼28일 국회 본회의 때 무조건 통과시킨다”며 “대중교통 근간이 흔들리긴 하지만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문제가 있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가 앞장서서 원칙과 대중교통 질서를 무너뜨리겠다니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버스업계가 택시법 강행처리 방침에 반발해 또 운행중단에 나서겠다고 하자 정부는 ‘택시산업특별법’을 제시했다. 대중교통 법제화까진 아니더라도 차량 대수 줄이기 보상, 택시요금 인상, 공영차고지 지원, 세제지원, 운수종사자 복지기금 조성 등 최대한 정부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택시법 혼란은 애초 정치권이 제공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원 5명이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에 포함시켜 재정 지원을 해주자는 택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다. 30만명 택시기사들의 표심을 얻으려고 정치권이 일을 벌였다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시민들의 발을 묶는 불편을 또다시 초래하려 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곳은 없다. 택시는 정해진 노선과 시간에 따라 엄격하게 운행해야 하는 버스와 다르기 때문이다. 버스는 승객수가 적더라도 산골 오지마을까지 운행하고, 이렇게 해서 생긴 적자폭을 정부가 일정 부분 보전해준다. 그런데 택시업계의 경영난과 열악한 택시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자고 세금을 대주자는 것은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전체 택시의 65%가 자영업 형태의 개인택시인데 택시 영업이 안 된다고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주면 불황을 겪는 음식점이나 판매점 등 다른 자영업자들이 들고 일어나면 또 혈세를 퍼줄 셈인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을 볼모로 떼쓰는 ‘집단 떼법’의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도 택시법 통과는 안 된다. 재정을 생각하지 않은 채 포퓰리즘 입법안을 발의하는 의원에겐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택시업계 경영난의 근본 원인은 택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1997년 연간 48억명이던 택시 수송인원이 2010년 37억명으로 23% 줄어든 데 비해 같은 기간 택시는 21만대에서 25만대로 오히려 19%나 증가했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통해 운행 택시수를 줄이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게 먼저다.
택시산업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은 신규면허 중단, 불법택시 퇴출, 감축 유도 등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와 택시업계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택시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연간 7600억원 규모의 유가보조금을 지급하고 일부 세제 지원을 해주고 있다. 택시요금을 올리고 정부 지원을 철회할 것인지 검토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