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미리 준비하면 남은 生 더 알차게 살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이영배·장점례 부부
입력 2012-12-25 21:41
‘…나의 죽음을 통해 너의들과 내가 인생에 대해서 더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아뭍튼 의가 상하는 일이 없이 사이좋게(삼남매) 지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구나 사는 게 힘들고 빡빡하더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는 삼남매 되기를 바란다’
강추위가 시작된 지난 일요일(23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난 이영배(83) 할아버지는 손바닥만 한 메모지를 내보여줬다. 맞춤법이 더러 틀리기는 했지만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아내 장점례(77) 할머니와 다니고 있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나비’를 듣고 나서 자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련한 메모라고 했다.
‘나비’는 복지관에서 마련한 임종준비프로그램 심화과정인 ‘나로부터 시작하는 아름다운 준비’의 줄임말로, 지난 11월5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진행됐다. 임종준비 프로그램 기본과정도 지난해 봄에 할머니와 함께 들었다는 이 할아버지는 “강의를 듣기 전에는 죽는다는 것이 두려웠는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할머니는 “그저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두 아들과 딸이 의좋게 살게 되길 바랄 뿐인데, 그렇게 하려면 재산정리를 해놓는 게 좋다는 강사 선생님 말씀이 머리에 쏘옥 들어 오더라”면서 두 아들과 딸에게 남은 재산을 똑같이 나눠줄 계획이라고 했다.
벽제 화장장 등에도 다녀왔다는 이들은 장묘문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단다. 이 할아버지는 “우리 부부는 내가 6·25 참전 유공자여서 경기 이천 국립묘지에 묻히기로 돼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주위 친구들에게 매장 대신 수목장 등을 권하고 있다”고 했다. ‘나비’ 수료장을 종종 꺼내 본다는 이들 부부는 “남은 동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복지관 강의도 부지런히 다니면서 듣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최근 노인종합복지관과 기독교계 등을 중심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교육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품위 있는 죽음과 생명의 상담’ 저자 김대동(분당구미교회) 목사는 “죽음은 실존이고 현실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으로 보고 터부시 한다”면서 죽음교육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여생을 충만하게 살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죽음 교육 프로그램들은 몸과 마음의 준비, 유언과 상속을 담은 법적준비, 장례와 장묘 준비, 사별의 아픔나누기 등을 담고 있다. 관에 들어가 보는 죽음 체험을 해보기도 한다.
21∼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웰다잉페어’가 열릴 만큼 웰다잉(well-dying), 즉 행복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지만 일부 노인들은 아직도 죽음과 맞대면하기를 꺼리고 있다.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 유경씨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부모님이 걱정이라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보라”고 귀띔했다.
예컨대, TV에서 죽음과 관련된 장면이 나올 때, 친지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성묘 등 집안행사 때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연명치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그런 것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 주라는 것. 유씨는 “특히 부모가 먼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라”고 조언했다.
유씨는 “어린이 청소년 중장년 노인 등 세대별로 눈높이에 맞춰 죽음준비교육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한해를 정리하면서 가족이 함께 유언장을 한번 써보라고 권했다. 유언장을 쓰는 동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삶의 우선순위 등이 확연하게 드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유언장은 특별한 양식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과 함께 연명치료·장기 기증 여부, 장례방법, 유산 상속 등 자신이 떠난 후의 처리, 그리고 그밖에 남기고픈 말을 쓰면 된다. 단,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작성일·작성장소 등과 함께 손도장을 포함한 도장을 찍어야 법적으로 유효하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