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채움’과 ‘비움’

입력 2012-12-25 17:36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어린 시절 풍선을 불다가 터져서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풍선을 불 때마다 혹시 터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왜 풍선이 터질까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공기를 너무 많이 넣었기 때문이지요. 적당한 양의 공기를 채우면 짓눌러도 터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기를 너무 많이 불어넣어 탱탱해진 풍선은 조그만 자극에도 터지기 마련입니다.

어찌 풍선뿐이겠습니까? 모든 것이 너무 많이 채우면 위험합니다. 자동차 타이어도 계절에 따라 적절한 공기압을 유지해야 안전합니다. 주머니도 계속 채우기만 하면 터지든지 밖으로 흘러버릴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 위를 지나치게 채우면 탈이 납니다. 그런 습관이 심각한 병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70∼80%만 채우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창고는 채우기보다 비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채우고 비우는 순환이 이루어질 때 수익이 계속 발생합니다. 우리나라 쌀 보관창고는 계속 채우기만 해서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수지도 물을 담아두는 기능을 하지만 결국은 비우기 위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목적 댐들이 많습니다. 홍수조절 기능도 하고 또 채워진 물을 흘려보내 비울 때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채우기만 해서는 결코 에너지가 생산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난 1995년 12월 25일 천국에 가신 우리교회 장기려 장로님께서는 비움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최고의 외과 의사이셨던 그분이 남기신 것은 복음병원 꼭대기의 옥탑방뿐이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받기 힘든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비우셨습니다. 그분의 흔적이 남아있는 옥탑방에 올라 비우기만 하셨던 삶을 더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 분을 떠나보내던 성탄절,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로 가득했었습니다. 평소에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조차 그분의 삶을 기리고 싶어 했습니다. 비우기만 한 그분의 삶은 이미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성공했다 싶은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비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채우기만 했으니 무너지는 것이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채우려는 욕망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위장한 채 비우지 못하니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비우셨습니다. 그 비움으로 인해 우리는 채워졌습니다. 이젠 우리가 비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채우고 싶어 기도합니다. 십일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창고를 가득 채워주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만 앞섭니다. 채움이 목적이 되어버린 비움, 의도가 순수해 보이진 않습니다.

<산정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