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시리아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입력 2012-12-24 18:47
“엄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간청해주세요. 할아버지가 붉은 옷 입고 있잖아.”
열한 살 쌍둥이 아이들은 엄마 셰리엔을 졸랐다. 21개월간 전쟁을 겪고 있는 시리아의 아이들에게 빨강색은 피의 빛깔, 공포다. 이 아이들은 일전에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형의 모습을 아직 잊지 못한다. 쌍둥이 아이들과 형은 몇 시간씩 기다려 빵을 샀지만 이내 시민들에게 뺏기고 말았다. 형은 빵 봉지를 뺏기지 않으려다 무참히 두드려 맞았다. 형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동생들은 덩그러니 빵가게 앞에 남겨졌다. 전쟁은 사람들을 굶주리게 했고, 인간은 빵 앞에서 잔인해져갔다.
세계가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들떠 있지만 시리아의 징글벨은 비통하게 울리고 있다고 중동 위성방송 알아라비아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이날 시리아 중부 하마주 할파야 마을에는 하늘에서 폭탄이 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몇 시간째 빵가게 앞에 줄 서 있던 여성과 아이들은 쓰러졌다. 미그 제트기는 빵가게를 공습한 뒤 인근 도로에도 폭탄을 떨어트렸다. 일대는 시신과 핏방울로 덮였다. 구급차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응급요원들은 돌무더기나 바닥에 널브러진 환자를 등에 업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빵을 사러 나섰다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찾아다니는 이들과 엉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은 절규했다. “3일 동안 밀가루를 전혀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오늘 사람들이 빵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섰던 건데… 친척을 찾고 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르겠어요.” 하마위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날 시리아 사태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300여명이 사망했다고 알아라비아는 보도했다.
시리아의 식료품과 생필품 부족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굶어 죽은 사람들 이야기가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이나 책, 카드 같은 것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다. 빵과 가스, 전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런 것을 희망한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예배당에도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북서부 해안도시 라타키아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주헤이르씨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위험하니까 많은 크리스천이 교회가 아닌 집에서 기도를 드릴 것 같다”고 말했다. 주헤이르씨의 가게는 손님이 없어 휑하다.
다마스쿠스에 사는 가장 바삼씨는 지독한 경제난으로 크리스마스가 괴롭다.
“크리스마스 때면 선물을 사곤 했지만 올해는 아이들에게 줄 장난감 살 돈이 없어요. 심지어 먹을거리를 살 돈도 없죠.”
“나 혼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거나 좋아할 수 없어요. 시리아에는 평화가 없으니까요.” 시리아를 탈출한 사업가 탈린씨는 고향에 남은 가족들 걱정에 해외에서도 마음 편히 보내지 못한다.
시리아의 크리스마스는 21개월간 죽어간 4만2000명을 애도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생존은 너무 힘겹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