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되돌아 본 2012] ② 안철수와 한국 정치
입력 2012-12-24 19:06
대선판 흔든 ‘새정치’
2012년은 온 국민이 ‘안철수의 생각’을 고민하고 ‘안철수의 입’을 바라본 해였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여야는 쇄신과 기득권 포기를 외쳐야 했다.
무소속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 이름이 정치권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 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를 꺾을 대항마로 급부상하면서부터다. 후보를 양보했지만 50% 넘는 지지율이 이어지면서 낡은 정치권을 바꿔야 한다는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졌다. 그는 나중에 ‘국민이 호출했다’고 표현했다.
국민적 기대에 1년간 응답하지 않던 그는 지난 9월 19일 출마선언과 함께 정치인으로 본격 데뷔했다. 선언에서는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고 했다. 곧바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렸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후보의 10%대 지지율은 덩달아 힘을 받았다. 그의 모든 행보는 기성 정치인과 달랐다. 탈(脫)여의도 의미로 종로에 꾸린 캠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측근들은 계파와 이념, 정파를 뛰어넘는 인사들과 법조인 등이 차지했다.
정치권은 소용돌이쳤다. 새 정치 바람을 절감한 새누리당은 정치개혁안을 내놓는 데 몰입했다. 민주당은 친노(親盧·친노무현) 2선 후퇴, 이해찬 대표 및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 기득권 포기를 현실화했다. 이렇듯 18대 대선의 핵심 정책 이슈는 단연 정치쇄신안이었다. 안 전 후보가 정당혁신 화두로 던졌던 중앙당 폐지, 반값선거운동은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가장 논란이 됐던 국회의원 정수(300명) 축소 문제는 결국 여야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안 전 후보는 출마 66일 만인 11월 23일 대선 후보직을 전격 내려놨다. 민주당과 재야단체 등 범야권의 압박으로 단일화 협상에 나선 지 열흘 만의 일이었다. 그는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졌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그의 말에 웃고 울었다. 여야의 흑색선전과 이전투구가 판치자 안 전 후보는 선거를 나흘 앞두고 트위터에 “과정이 혼탁해지면 이겨도 절반의 마음이 돌아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가 지원한 문 전 후보는 결국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안 전 후보에 대한 평가는 아직 물음표다.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칭찬도 있지만, 야권 내에서는 정권교체 실패 책임론도 나온다. 상반된 시각을 뒤로 하고 안 전 후보는 대중의 시야에서 다시 사라졌다. 미국에 간 그가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정치판에 재등장할지 사뭇 기대된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