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문흥호] 베이징 하늘에도 신은 존재하는가
입력 2012-12-26 10:40
“성탄절 아침을 맞아 중국에도 참된 신앙의 자유가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중국의 정치·외교를 전공한 덕분에 중국을 자주 찾는다. 1992년 수교 이전부터 중국 곳곳을 다니며 중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실감했다. 지난 30여년 중국의 변화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체된 분야가 적지 않다. 중국의 종교 문제도 실질적 변화가 거의 없거나 매우 더딘 부분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향후 종교 문제의 많은 변화 가능성을 암시한다.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 중국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오쩌둥의 교시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전면 부정했다. 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유물론적 해석을 교조적으로 신봉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반종교적 광풍은 다소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형식적 측면이 강하지만 헌법에 종교 신앙의 자유를 명시하고 기독교, 천주교, 불교, 회교, 도교 등 5대 종교를 공식 인정했다. 중국 정부는 종교 활동의 인위적 금지가 미신 창궐 등 부작용을 유발하며 인민의 생활이 윤택해지면 종교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예로 서구 선진국에서 종교가 크게 퇴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외형적 변화와 무관하게 중국 정부는 지금도 종교 활동과 조직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종교의 법적 허용과 종교 활동의 철저한 감시·규제를 병행하는 이유는 종교 자유의 확대가 중국식 시장경제의 불공정 경쟁에서 낙오된 노동자, 농민 등 절대다수 인민들의 조직적 저항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 중국은 유사 종교인 파룬궁(法輪功) 신도들의 집단 저항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종교 문제가 중국의 최대 약점인 민주, 인권 등의 사안과 결부되어 체제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종교가 비우호적인 외부 세력의 내정 간섭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실제로 종교 관련 활동을 규제하는 중국의 ‘종교사무조례’는 각 종교가 독립·자주·독자의 3원칙에 따라 외세의 관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종교 문제는 사회주의 이념으로부터 체제 안정, 대외관계에 대한 고려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한 정치사회적 사안이다. 중국의 정치민주화처럼 진정한 종교 신앙의 자유도 단기간 내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우선 중국 정부가 기존의 종교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신은 존재한다’는 충격적 선언을 통해 소련의 종교 자유를 전폭 허용했지만 중국 최고지도부가 ‘베이징의 하늘에도 신은 존재한다’고 선언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들은 아마 중국의 종교 활동이 이미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것이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중국의 종교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이 종교 활동의 자유를 위해 정부와 집단적으로 투쟁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두 해 전 베이징의 한 교회가 예배 장소를 임차하지 못해 거리에서 부활절 예배를 보며 정부의 종교정책에 항의했지만 정책변화를 이끌어 내진 못했다. 그밖에 국제사회가 중국의 종교정책 변화를 압박할 수단과 효과 역시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베이징의 한 교회를 방문하면서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국 인민들의 예배와 찬송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며 의도적으로 중국의 종교정책을 비판했지만 중국 정부의 불만만 가중시켰을 뿐이다.
결국 중국의 종교 문제는 중국 정부, 종교 신자, 중국 선교를 추진하는 국제적 종교 단체 간의 갈등과 협력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탄절 아침 중국의 참된 종교 신앙의 자유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