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탯줄
입력 2012-12-24 18:37
‘한 밭머리에 태(胎)를 묻었다’는 속담은 두 사람이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 말할 수 없이 친한 사이임을 뜻한다. 생명의 원천인 태는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태반이나 탯줄 등 모든 조직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원초적인 고향이나 다름없다.
윗대부터 이어 온 오랜 믿음을 뜻하는 모태신앙은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받은 신앙이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전통과 역사에서 보통의 믿음과 비교할 바 아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믿음을 가졌으니 돈독할 수밖에.
모태를 소중히 여기는 풍속은 우리 왕가에도 있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태를 중히 여겨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를 묻기 위해 태실도감을 설치해 좋은 자리에 석실을 만들어 보관했다. 풍수지리설이나 도교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남 사천 곤명에 있었던 세종대왕의 태실은 정유재란 때 도굴돼 이후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혼부부들이 아이를 한 명 아니면 두 명만 낳기 때문에 그만큼 아기가 귀한 세상이 됐다. 이런 세태에 맞춰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의 일부를 담아 보관하는 탯줄함이 출시됐다. 인터넷 동호회 회원을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 탯줄이나 배냇저고리 등을 위생적으로 처리해 영구 보관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대중적으로 히트할지는 미지수다.
탯줄과 관련된 비화 한 토막. 이번에 아쉽게 낙선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고향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경남 거제 명진마을이다. 작고한 부친이 흥남에서 피란 내려와 정착한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살다 부산으로 이사 갔다.
이 마을에서는 대통령 선거 개표 당일 문 후보가 태어날 당시 탯줄을 잘라준 할머니가 오매불망 그의 당선을 염원했다고 한다. 바로 옆집에 살았던 스물세 살의 새색시였는데 지금은 80대 할머니가 됐다. 100명 남짓한 이 마을 주민들은 문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대비해 풍악까지 준비했지만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탯줄을 자른다는 의미는 어머니와 떨어져 한 사람의 완전한 객체로 출발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동안 어머니로부터 일방적으로 영양을 공급받던 파이프라인이 떨어져 독립해야 하는 출발점에 선 것이다. 홀로서기의 시작인 셈이다. 적지 않은 표를 얻은 문 후보가 이번 실패를 좌절로 여기지 말고 경험을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했으면 싶다. 연습은 성공의 어머니란 말도 있지 않은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