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民은 물과 같다
입력 2012-12-24 18:37
배는 물 때문에 다닐 수 있고 물 때문에 전복된다. 백성은 물과 같다. 백성은 임금을 추대하기도 하고, 백성은 나라를 뒤엎기도 한다.
舟以是行 亦以是覆 民猶水也 古有說也 民則戴君 民則覆國
조식(曺植 : 1501∼1572) 남명집(南冥集) 권1 ‘민암부(民巖賦)’
동지가 지났다. 날씨는 혹한으로 치닫겠지만 해는 밤이 줄어드는 만큼 날마다 조금씩 길어질 것이다. 궁음(窮陰)의 계절이 끝나고 양기가 회복되듯, 세상도 길어지는 볕살을 따라 따사로워지길 기대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오늘날 대통령은 국민의 뜻이 모여 결정되거니와 옛날에도 나라는 백성에 의해 세워지고 무너져, ‘백성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백성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得衆則得國 失衆則失國)’고 했다. 이 때문에 민(民)을 방본(邦本)이라고 한다. 남명은 이러한 민의 속성을 물에 비유해, 임금과 민을 배와 물의 관계로 말했다. 저 유명한 민암부(民巖賦)이다.
민암은 백성들이 가파른 바위처럼 위험한 존재란 뜻인데, 사상의 연원은 깊다. 주나라 건국의 대업을 완성한 무왕은 기반이 미처 안정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주나라는 어린 성왕의 손에 맡겨졌다. 무왕의 현명한 재상이었던 소공은 충심을 담아 어린 성왕에게 말하였다. “백성들을 화합하여 이제 아름답게 하소서. 왕께서는 감히 덕을 소홀히 하지 마시어 백성들의 험암(險巖)함을 돌아보고 두려워하소서.”
민을 물에 비긴 비유 역시 연원이 오래다. 순자가 ‘임금은 배이고 서민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엎기도 한다’고 하였다. 민은 힘없고 미약해 보이지만 몹시 다루기 어렵고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민의 존재를 이처럼 짧은 말로 강렬하게 부각한 문장들이 또 있을까.
고대의 민이 민권(民權)을 가진 오늘날 민의 의미와 그대로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민은 하나하나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의 주체다. 그야말로 두려운 존재이다. 그 민이 힘을 모아 새로운 배를 띄웠다. 순탄치 않을 긴 항해에 남명의 민암부가 좋은 나침반이 되리라 믿는다.
이규필(성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