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명호] 박근혜, 메르켈, 48%

입력 2012-12-24 18:43


#1. “고속도로를 건설하세요. 그곳을 달릴 자동차 산업을 키우세요. 자동차 산업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도 많이 걷힙니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제철소를 세우세요. 에너지를 위해 석유화학 공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품을 실어 나를 선박을 만드세요.”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대통령 박정희는 경제장관 출신의 총리 에르하르트로부터 이런 조언을 들었다. 1시간 반 이상 회담 시간 동안 경제 건설을 위해 돈을 꿔달라고 읍소하던 자리였다. 에르하르트는 3000만 달러 차관을 약속했다. 1965년 당시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였다.

#2. 2000년 3월 9일, 대통령 김대중은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다. 분단의 현장 독일에서 냉전 종식을 위한 경제협력과 남북 직접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결국 첫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다. 일부 보수 세력의 퍼주기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한평생 천착해온 남북관계 진전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독일과 인연 많은 박 당선인

#3. 2006년 6월 28일, 한나라당 대표를 그만둔 박근혜는 첫 외국 방문지로 독일을 택한다.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만나기 위해서다. 양국 정부 관계가 미묘해질까 봐 국가 정상이 외국의 야당 지도자를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2000년에 첫 만남을 가진 박근혜와 메르켈은 이미 그런 관계를 넘어선 단계였다. 메르켈은 면담 장소에서 의도적으로 한국 사진기자들에게 친숙한 포즈를 취했다.

박근혜는 그 다음날 한국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대선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밝힌다. 메르켈을 만난 뒤 독일에서 대선 출마를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박근혜의 머릿속에는 돈을 꾸기 위해 아버지가 찾았던 독일이 있다. 아버지의 평생 정적이 새로운 남북관계를 제안한 분단의 현장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은 자신이 지향하고 있던 바다. 그리고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 경제적으로 우뚝 서 있는 메르켈의 독일이 있다.

박근혜가 2006년 대선 출마를 첫 언급한 자리가 독일인 것도, 메르켈이 이례적으로 한국 야당 대선후보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편지를 보낸 것도, 지난 20일 당선 뒤 외국 정상으로는 첫 축하전화를 한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다. 내년에 대통령으로서 독일 방문을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메르켈은 보수적 기독민주당의 당대표이다. 이달 초 97.9%라는 사상 최고의 지지율로 당대표에 연임됐다. 내년 총선에서도 재집권이 확실할 정도로 독일 국민들은 신뢰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은 유럽 통합, 경제적 번영, 탈이념, 정책 유연성에 있다. 구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메르켈은 반대파인 전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정치적 결단을 받아들이는 탈이념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진보적인 슈뢰더는 집권 시절(2003년)에 경제·교육·복지 등의 패키지 개혁안 ‘어젠다 2010’을 시작했다. 슈뢰더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거머쥔 메르켈은 이 정책을 이어받았다. 명분은 사회적 갈등 해소와 경제 번영이었다.

상대 포용하는 큰 길 걸어야

메르켈은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이 개혁안은 진보와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결실을 거뒀다. 독일이 유럽 경제의 버팀목이 된 원인 중 하나다. 그것만 한 게 아니다. 원전 폐기, 저소득층 연금 확대, 최저 임금제 지지 등 진보 진영의 어젠다까지 수용했다. 국민적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신뢰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뚝 선 경제적 상황에도 있지만, 그런 상황을 가능케 한 정치적 리더십에 있었다.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전략적 유연성을 가지며, 상대 주장도 수용할 줄 아는 ‘대연정 정신’이 그것이다. 대통령 박근혜가 지지하지 않은 48%를 5년 내내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김명호 편집국 부국장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