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화장품 업계 OEM 의존 R&D 투자 소극적… 용기 디자인·성분만 살짝 바꾸고 “신제품” 홍보

입력 2012-12-24 11:16


중저가 화장품 매장을 자주 찾는 김주하(가명)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불과 몇 달 전 구매했던 화장품이 단종된 제품이라는 얘기를 매장 점원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신제품을 직원으로부터 권유받았다. 김씨는 “제품 용기와 성분만 조금 달라졌다고 리뉴얼 명목으로 가격만 20%를 올렸다”며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지나치게 짧은 것을 볼 때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수입화장품과 당당하게 겨루겠다던 국내 중저가 화장품 업계가 연구개발(R&D) 투자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OEM(주문자위탁생산) 제조방식 등에 의존한 신제품 출시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제품 출시 ‘빨리 빨리!’… 한 달에 100개 제품 출시도= 국내 저가 화장품 시장에도 ‘빨리 빨리’ 바람이 불어 닥쳤다. 2012년에도 저가 화장품 브랜드들은 신제품 출시 경쟁에 열을 올렸다. 실제 한 저가 ‘브랜드숍’에서는 한 달 동안 무려 약 100∼200개의 신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 업체는 일부 제품라인 리뉴얼, 성분 추가, 용기 디자인 변경 등을 이유로 ‘신제품’을 시장에 연이어 출시했다.

◇화장품 기업 R&D 투자비율은?= 이처럼 갈수록 치열해지는 화장품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R&D 투자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8∼2011년 ‘총 매출 대비 R&D 비율’은 로레알 3.4%, 시세이도 2.2%, 에스티로더 1.1%인 것으로 조사됐다. 홍종희 로레알코리아 그룹홍보실 이사는 “로레알의 경우 매년 총 매출의 3∼4%를 연구혁신분야에 투자하며 전세계 19개 연구센터와 16개 평가센터를 통해 글로벌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화장품에 도전장을 내민 국내 업체의 실정은 어떨까.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분석한 ‘2011년 화장품 생산실적’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생산실적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상위 10개사가 전체 시장의 76.3%를 점유하고 있다. 또 세계 화장품 국가별 시장 점유율에서 한국은 세계 12위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출 대비 R&D 비율은 아모레퍼시픽 3.3%, LG생활건강 약 2.5%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서양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화장품 시장에서 차별성을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은 품질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R&D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저가 브랜드숍은 대부분 OEM 등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브랜드숍 중에는 별도의 연구전담팀도 없고 연구인력 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곳이 태반”이라며 “말로는 글로벌 경쟁력 운운하지만 규모 키우기와 신속한 제품 출시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리한 할인 경쟁과 경쟁사 간 미투 제품 난립이 시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 요인”이라며 “세계 유수 브랜드와 겨루고 싶다면 경쟁력을 갖춘 연구 인력을 확충하고 독자적인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윤형 쿠키건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