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박근혜 정부 ‘한국판 어젠다 2020’ 만들어라

입력 2012-12-23 21:57

2003년 3월 14일.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을 이끌던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는 연방의회 기조연설을 통해 ‘어젠다(Agenda) 2010’ 개혁안을 발표했다. 통일 후 불어난 재정 부담과 ‘독일병(病)’으로 불렸던 고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복지 혜택을 줄이는 개혁에 사민당 지지 세력인 노동자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슈뢰더 총리는 차기 총선 패배를 감수하고라도 2010년까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슈뢰더 정권은 2005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우파 성향 앙겔라 메르켈 기독민주당 대표는 어젠다 2010을 외면하지 않고 바통을 이어받았다. 사민당과의 ‘좌우 대연정’을 통해 정책 연속성을 유지한 것이다.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실업률이 하락했고 어젠다 2010 개혁안은 독일 경제 회복의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새 정부가 출범한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된 저성장으로 초래된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 심화, 청년실업 증가 등으로 서민경제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좌우 대립과 계층 간 갈등도 심각하다. 독일이 2003년 어젠다 2010을 추진한 것처럼 우리도 2013년 이분법적 대결논리에서 벗어나 어젠다 2020을 만들 필요성이 제기된다. 새 정부가 전 정권의 좋은 정책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5년 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될 수 있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브레인으로 꼽히는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노조가 지지기반인 슈뢰더 정권이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과감히 개혁을 추진했다”며 “새 정부는 재벌과 노조 양쪽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인수위 초기부터 단단한 각오로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양극화 문제 해결이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박 당선인이 비록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진보 정책도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베를린 연방의회에서 만난 하르트무트 코쉭 독일 연방정부 재무차관은 “사민당의 개혁정책을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이 이어받아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됐다”면서 “독일 경제 성공에서 보듯 경제정책은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인강의 기적’과 같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성장을 이뤄냈던 한국 경제는 이제 질적 도약을 위한 기로에 서 있다.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을 위한 정책 추진과 이를 꿋꿋이 실천할 수 있는 정치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판 어젠다 2020=양극화 심화 문제와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야 할 복지·교육·산업 분야 등의 개혁 정책을 말한다. 독일의 슈뢰더 정권이 2003년 발표한 ‘어젠다 2010’ 개혁안에서 따왔다. ‘어젠다 2010’은 진보적인 슈뢰더 정권이 일부 보수정책을 수용해 추진했고, 보수적인 메르켈 정권이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이 안은 고용, 연금, 의료, 세제, 교육 등 패키지 개혁안으로 독일 경제 회복의 원동력이 됐다.

한장희 기자, 베를린=하윤해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