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대표적 ‘독일통’ 김평희 코트라 글로벌연수원장 인터뷰
입력 2012-12-23 19:23
김평희(55)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글로벌연수원장은 대표적인 ‘독일통’이다. 14년간의 독일 근무 중 뮌헨·프랑크푸르트 무역관장을 지냈으며 폭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인베스트코리아플라자(IKP)에서 만난 김 원장은 “독일이야말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최적의 대상”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이 불과 10년 만에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의 ‘생명줄’ 노릇을 할 정도로 경이적인 회복세를 보인 과정에 한국이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젠다 2010’ 개혁을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간 지도자들의 용기가 독일에서 본받아야 할 포인트라고 김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지지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복지 정책 개혁을 추진한 슈뢰더 전 총리와 라이벌 정당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슈뢰더 개혁안을 대폭 수용한 메르켈 총리의 결단이 최근 몇 년간 나타난 경제 회복으로 서서히 열매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평소 대립하다가도 국가 위기 상황이면 ‘상위의 목표’를 위해 뭉치는 ‘대연정’ 정신이 독일 정치의 저력이라고 꼽았다.
김 원장은 슈뢰더의 아젠다 2010 개혁안엔 ‘일하는 사람 머리 위에서 놀 수 없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또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복지 혜택을 줄인 슈뢰더 개혁은 과거 독일 사회에 팽배했던 ‘회사에서 쫓겨날 일 없다(노동자), 일하지 않아도 굶을 일 없다(실업자)’는 안이한 분위기를 바꾸는 자극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또 기업들의 세제 부담을 줄이고, 고용 여건을 완화시킨 것 역시 경기 활성화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양극화 심화와 관련해 정부와 국민, 기업이 골고루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복지 시스템 정립이 시급하지만 분배만 강조되는 복지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분배를 공산주의식이 아니라 독일식으로 해야 한다”며 “근로가 전제된 질 높은 복지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사실 독일 경제가 외생 변수에도 안정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근간은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알짜배기 중소기업들이다.
김 원장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1500여개 히든 챔피언은 독일 산골마을까지 골고루 퍼져 있으며 대부분 설비, 장비, 부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로 B2B(기업 대 기업 비즈니스) 특성상 고객의 충성도가 높다. 그만큼 경기에 덜 민감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세계 최강 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 바탕엔 수준 높은 엔지니어가 있고, 이들은 독일의 효율적 교육시스템을 통해 배출된다는 것이다.
이론보다 현장, 실습을 선호하는 독일의 학생들은 4년제 대학이 아닌 3년제 응용대학을 선호하며, 응용대학 출신의 엔지니어는 독일 기업의 기술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독일은 인문계·실업계·기능계 중고교를 졸업해도 종합대학, 응용대학, 직업학교로 자유롭게 진학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어떤 학교를 졸업하든 누구나 다 적재적소에 쓸 만한 재목으로 만들어지는 장점이 있다. 체면 때문에 무조건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교육풍토가 고학력 실업자를 낳는 한국식 낭비가 독일에는 없다.
김 원장은 “학비가 면제되고 의료비 부담도 제로에 가까운 독일 청년들이 훗날 취업을 하면 자신들이 입은 혜택 덕분에 납세에 불만이 적고, 기업 결정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경영자와 갈등이 없다”며 “이처럼 사회적 시장경제는 선순환이 되면 큰 장점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글=한장희 기자, 사진=김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