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메르켈을 보면 박근혜가 보인다

입력 2012-12-23 19:10


로이터 통신은 지난 19일 한국 대선 소식을 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롤 모델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박 당선인도 자서전에서 메르켈 총리에 대해 “같은 보수 정당의 당수이며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다”고 썼다.

2000년 첫 만남 후 정치적 동지로… ‘국가 업그레이드’ 임무

이들은 그동안 세 차례 만났다. 지금은 각각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당선인,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지만 첫 만남은 모두 야당 지도자였을 때 이뤄졌다. 비슷한 점이 많아 처음부터 친근감이 남달랐다는 게 이들의 만남을 지켜본 사람들의 증언이다. 특히 두 살 어리지만 대권을 먼저 잡은 메르켈 총리가 박 당선인에게 정치적 덕담을 많이 건넸다.

박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걸어 온 해외 정상도 메르켈 총리였다. 한·독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만날 두 여성 지도자의 각별한 인연으로 향후 양국 관계는 역대 최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의 인연은 박 당선인이 200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독일을 방문, 메르켈 총리를 만나며 시작됐다. 박 당선인은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였고 메르켈 총리는 야당이었던 기독민주당(CDU)의 대표였다.

두 번째 만남은 박 당선인이 당 대표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6년 9월 말 독일을 찾으며 이뤄졌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로 분주했지만 박 당선인과 총리 집무실에서 30여분 동안 단독 면담을 하며 우애를 과시했다.

세 번째 만남은 2010년 11월 메르켈 총리가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을 때 성사됐다. 메르켈 총리는 이화여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박 당선인과 단독 면담을 가졌다.

메르켈 총리는 이 자리에서 박 당선인에게 “한국의 통일에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겠다”면서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고 의미심장한 덕담을 건넸다. 박 당선인은 “통일에 있어서는 독일이 선배니까 많은 지지와 지원을 바란다”고 답했다.

덕담은 현실이 됐다. 메르켈 총리는 대선 다음날인 20일 박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갖고 승리 축하 인사를 전하며 내년 한·독 수교 130주년을 맞아 박 당선인을 초청했다. 박 당선인과 메르켈 총리의 친분은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이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전날인 지난 8월 19일 새누리당이 “메르켈 총리가 대선 승리를 기원하는 서한을 보내왔다”고 밝히자 민주통합당이 원문 공개를 요구하며 발끈하기도 했다.

이들의 인생에 공통점이 많다는 점도 우의가 돈독해진 배경이 됐다. 먼저 여성으로는 드물게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했다.

박 당선인은 1970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1974년 졸업했다. 메르켈 총리는 1973년 동독 라이프치히대 물리학과에 입학해 1978년 학·석사 통합 학위인 디플롬을 받았다. 공부를 계속해 1986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들은 또 소속 정당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낸 여인이다. 박 당선인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던 한나라당을 천막당사로 기사회생시키며 정치인생의 일대 전기를 맞았다.

메르켈 총리는 통일 독일의 첫 총리이자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이 1999년 말 터지자 그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며 기민당을 수렁에서 건져냈다. ‘콜의 정치적 양녀’라고 불렸던 메르켈 총리는 배신자 소리를 들었지만 기민당을 살려내고 콜 전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녀가 없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다만 박 당선인은 미혼이고 메르켈 총리는 두 번 결혼했는데 자녀를 갖지 않은 점이 차이다. 대학 때 같은 과 남학생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메르켈 총리가 재혼 직후 정치에 뛰어든 것이 자녀를 갖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독일 언론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수장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처음 만나게 된 것도 메르켈 총리 때문이었다. 박 당선인이 2006년 9월 메르켈 총리와의 두 번째 만남을 앞두고 조언을 얻기 위해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박사 출신인 김 위원장을 찾았다. 김 위원장이 당시 박 당선인에게 “메르켈 총리를 벤치마킹하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두 사람은 정책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메르켈 총리는 여성청소년장관 시절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청소년보호법 개정을 관철해 3세 이상 어린이들이 유치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다. 총리가 된 후에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조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여성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박 당선인 역시 여성 정책 공약의 중점을 보육에 뒀다.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다. 매년 50개씩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려 보육 문제를 해결하고, 0∼5세 아동에게 양육수당을 지원하는 것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또 박 당선인의 제1 대선 공약인 ‘공정성을 높이는 경제민주화’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엄격 처벌 등 공정성을 강조하는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되 국가는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과 흡사하다.

여기에 과도한 사회복지 비용이 국가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같은 보수당 지도자지만 진보 이슈를 적절히 수용하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이슈가 떠오르자 금산분리 강화 등의 공약을 내걸며 보수층의 이탈을 막고 중도층을 끌어안았다. 메르켈 총리도 보수 정당인 기민당의 대표지만 원자력발전소 폐기, 최저임금 인상 등 진보 정책을 받아들이며 지지기반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