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2부) 5년, 새 정부의 과제] ① 한국판 어젠다 2020

입력 2012-12-23 16:27


메르켈 ‘슈뢰더 어젠다 2010’ 계승… 닫힌 성장판 열다

1980년대 말까지 독일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90년 통일 이후 상황은 악화됐다. 구동독 경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나빴다. 이 지역 재건을 위해 매년 1조6000억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됐다. 90년대 중반 독일 신문에는 ‘유럽의 병자’ ‘독일 경제의 미래는 있나’라는 제목이 연일 실릴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실업자 증가가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독일 쾰른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출신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3일 “최대 500만명까지 늘어난 실업자 문제가 최대 정치 현안이었다”며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이 미래 독일을 맡아야 한다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998년 16년 만의 정권교체로 집권당이 된 좌파 성향의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 이른바 적록연정(赤綠聯政)의 골칫거리도 실업 문제였다. 실업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실업보험과 생활보호 지원금 지출로 재정 상황은 갈수록 궁핍해졌다. 이에 적록연정은 독일판 ‘제3의 길’이라 할 수 있는 ‘신중도(Neue Mitte) 개혁’ 실험에 나선다. 당시 유럽에선 고용 유연화와 시장논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강하게 대두됐다. 신중도 개혁은 좌파가 주도권을 쥐면서도 신자유주의 이념을 가미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담긴 일종의 자구책 성격이 짙었다.

적록연정을 이끌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당시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면서 실업률을 줄여가고 있던 네덜란드 등에 대한 벤치마킹에 나섰다. 또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을 끌어들여 사회적 대협약을 시도했다. ‘일자리 직업훈련 및 경쟁력을 위한 연대(고용연대)’가 만들어졌고, 사회과학자들도 속속 참여했다. 하지만 노동정책 개혁에 대한 합의는 적록연정 1기가 마무리되는 2002년까지 도출하지 못했다.

좌절을 맛본 슈뢰더 총리는 국민 호응을 이끌어내는 외교 정책을 돌파구 삼아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2003년 슈뢰더 총리는 사회 합의 방식은 포기하고 의회 내에서 여야가 합의해 개혁안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추진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면서 개혁 청사진인 ‘어젠다(Agenda) 2010’을 발표했다.

개혁안은 사회, 경제 분야의 고비용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실업급여 지급기간 단축 등 복지 혜택을 줄이고 해고 규정을 완화하도록 한 ‘하르츠 법안’을 만든 것이 핵심이었다. 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한 ‘부당해고금지법’의 적용 대상 기업을 직원 ‘6명 이상’에서 ‘10명 이상’으로 완화했으며, 실업급여 수혜 요건을 강화했다. 반면 기업 세금은 낮췄으며 임시직 채용이 쉽게 이뤄질 수 있게 했고, 1인기업 창업이 용이하게끔 제도를 정비했다. 비록 소액이지만 진찰료를 내는 방식으로 무상의료 정책도 바꿨다.

야당인 우파 성향의 기민당은 개혁안에 동의했고 하르츠 법안은 통과됐다. 만성적 경기 침체와 고실업 상태가 경쟁과 성장보다 형평과 분배, 복지와 노동권 보호에 치중한 탓이 컸다는 공감대가 의회 내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 사이 슈뢰더 정권은 사회국가(복지국가) 제도를 폐지하는 게 아니라 재구축을 위한 모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았다. 복지 혜택 축소에 실업자뿐 아니라 적록연정을 지지했던 노동자들마저 강하게 반발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려 통일의 단초를 제공했던 ‘월요시위’가 2005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15년 만에 재현되기도 했다. 사민당 내 개혁안에 반대하는 좌파 세력이 떨어져나와 동독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주사회당 계열과 연합, 통합좌파 정당인 ‘디 링케(Die Linke)’까지 창당하기에 이른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결국 적록연정 2기를 조기에 마감시켰다. 정치적 최대 위기에 봉착한 슈뢰더 총리는 2005년 의회를 해산시켰다. 사민당의 2006년 총선 참패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선거 결과 기민당-자민당의 우파 연합이 승리한다. 정권을 넘겨받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좌파 성향 사민당과 좌우 대연정 정부를 출범시켰다. 특히 프란츠 뮌터페링 사민당 대표를 부총리 겸 노동장관에 지명하는 등 장관직 14자리 가운데 핵심 8개 부처 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내줬다. 기민당의 각종 정책들이 좌파인 사민당 장관 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연정이 이뤄진 것은 슈뢰더 개혁안을 고수해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메르켈 총리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어젠다 2010 기조를 유지하면서 고용, 세제 등 경제구조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또 경제활성화를 위해 250억 유로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과 파격적인 출산장려책도 시행했다. 이후 독일 경제는 부흥기를 맞는다. 사회보장 제도 개혁으로 재정건전성이 강화됐고, 성장률은 유로지역 평균치를 상회했다. 물가는 2% 내외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특히 10%가 넘었던 실업률은 올 초 6% 이하까지 떨어졌다.

듀스버그에센대 경제학과 앙거 벨케 교수는 “독일 경제가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2003년 슈뢰더 당시 총리가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며 “2005년부터 어젠다 2010이 효과를 발휘하며 독일 경제가 다시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베를린=하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