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기태] 지방대학과 지역대학

입력 2012-12-23 18:51


한 방송사의 유명 개그 프로그램에서 ‘네 가지’라는 제목의 코너가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 촌스러운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등 각각의 단점이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자기 단점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통해 세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단순하지 않아서일까.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그 자체를 전부인 것처럼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생긴 것만으로 지레짐작하다 보니 선입견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서울과의 거리로 평가하는 현실

지독한 선입견으로만 따지자면 아마 ‘지방대학 타령’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지방대학 학생의 작품인 줄은 정말 몰랐는데요.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언젠가 전국 규모 공모전에서 우리 학과 재학생팀이 대학부문 최우수상을 차지하자 시상식장에서 맨 먼저 나온 말이었다. 또 1년에 한 번씩 재학생들이 정규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방학까지 반납해 가며 직접 취재해 기사를 쓰고 편집 디자인 솜씨를 부린 끝에 완성한 학과잡지를 전국의 여러 기관과 단체에 보냈을 때 나타나는 반응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지방대학에서 이런 걸 만들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런 선입견은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지난 늦가을, 필자가 서울시에서 개최한 서울북페스티벌에서 저자와의 만남 등 주요 행사를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지방대 교수한테 서울시 행사를 맡기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어디서도 열리지 않는, 그래서 수고로움 또한 남다른 ‘전국 고등학교 교지 콘테스트’를 주최하고 있지만 수많은 고등학교 관계자들이 지방대학 타령을 빠뜨리지 않는다. 나아가 기껏 응모해 놓고 시상식장엔 나타나지 않는 입상 학교도 적지 않다. 확인 전화를 해보면 한결같이 “지방이라 멀어서…”라며 말끝을 흐리곤 한다.

또 이러저러한 결과들을 널리 알리고싶어 열성적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보내곤 하지만 중앙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주지 않는다. 홍보전담 기구를 두고 언론플레이에 열성적인 서울 소재 대학들의 경우 총장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보도되지만 이른바 ‘지방대학’에서는 웬만큼 큰 성과를 내놓아도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학교와 학과의 경쟁력 살펴야

취업 현장에서 지방대학 출신자들의 이력서가 우선 제외되는 것처럼 보도자료에도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다니엘 부어스틴의 명저 ‘이미지와 환상’이 떠올랐다. “언론자유는 이제 인위적으로 만든 뉴스라는 상품을 팔기 위해 기자들이 갖는 특권을 점잖게 표현한 말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더욱 또렷해졌다고나 할까. “이게 진짜냐?”라는 질문보다는 “이것이 뉴스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의 장벽을 통렬하게 느낀 셈이다.

최근 정부 위원회 회의석상에서 고위 공무원이 ‘지방대학’ 운운하기에 필자는 “지방대학이 아니라 ‘지역대학’이다. 수도권 지역에 여러 대학이 있듯 충청지역에도, 호남지역에도, 그리고 영남·강원·제주 지역에도 여러 대학이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반론을 펼친 바 있다.

수도권에서 먼 지역에 기반을 둔 대학에도 경쟁력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신입생 유치에 애를 먹는 지역대학들의 현실은 무조건 수도권과의 거리만으로 학교 서열을 매기려는 풍토에서 기인한다. 앞으로는 학교별, 학과별 특성이 제대로 알려져 소신과 끼로 뭉친 젊은이들이 괜찮은 지역대학의 캠퍼스를 선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기태(세명대 교수·미디어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