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후보 지지한 48%, 미래 위해 자세 추스릴 때
입력 2012-12-23 18:50
실의의 늪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활력의 주체 되길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남긴 후유증이 우려스럽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가운데 아직도 좌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선거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치유의 음악을 보내주며 서로 실의를 다독여 주는 중년들이 있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표현하는 20대도 있다. 이들은 두 후보가 걸어온 길을 비교하면서 이번 선거가 시대정신의 퇴행을 가져왔다고 단정하는 부류다.
그러나 51.6% 대 47.9% 득표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숙한 기록이다. 두 후보 사이에 놓인 3.7%, 108만표 차이는 관점에 따라 압승으로 볼 수도, 석패로 볼 수도 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런 차이를 인정하는 전통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것이 다소 불합리하고 대의(代議) 기능을 수행하는 데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의 근본적 한계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득표율에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패했다. 최근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에 지명된 존 케리도 2004년 선거에서 불과 2.5% 차이로 졌다.
문재인 후보도 이런 사실을 알기에 깔끔한 연설로 결과에 승복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국민들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박 당선인은 기자회견에서 “저나 문 후보 모두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마음만은 같았다”고 화답한 데 이어 직접 전화를 걸어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다짐했다. 한국 선거사에서 승복의 문화가 자리 잡는 명장면이었다.
하지만 문 후보를 지지한 일반 유권자의 반응은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20일 새벽부터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초기에는 “통곡을 하며 폭음한다”거나, “박근혜 보기 무서워 아예 TV를 켜지 않는다”는 등 이른바 ‘멘붕’을 호소하는 측면에 그치더니 날이 갈수록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위험 국면을 드러내고 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는 빨갱이 짓” “기초노령연금 폐지하라” “버스와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 양보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등 핵심에서 빗나간 글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노인보수층들도 ‘51.6%’라는 득표율 숫자를 ‘5·16 혁명’에 대한 긍정으로 해석하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특정 진영의 대표가 아닌 한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고도의 정치행위다.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으면 선거제도 자체가 존속할 수 없다. 비록 대선 승리에 특정 계층이나 지역의 뜻이 과도하게 개입됐다고 해도 그것 역시 일반의지의 반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이제 48%의 국민들은 또 다른 5년 후를 위해서라도 몸과 마음을 새롭게 추스려야 할 시점이다. 그들에게는 우리 사회에 활력을 뿜어내는 건강한 비판자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